컬처&트렌드 [경남작품집] 한 사람의 몸에 새겨진 진주의 춤, 춘당 김수악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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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84 / 26-09-30 글 김보배 사진 김수악기념사업회본문
춤은 붙잡아 둘 수 없다. 한 번의 장단이 지나가고 발끝이 바닥을 떠나는 순간, 조금 전의 움직임은 이미 사라진다. 그림처럼 걸어둘 수도, 글처럼 책장에 남겨둘 수도 없다. 그럼에도 어떤 춤은 한 시대를 지나 오래도록 살아남는다. 누군가의 몸에서 또 다른 누군가의 몸으로 옮겨가며 다시 피어난다. 진주의 전통춤을 이야기할 때 춘당 김수악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진주검무의 날 선 기품과 진주교방굿거리춤의 유연한 멋을 자신의 몸에 익히고, 평생 제자들을 가르치며 다음 세대에 건넨 사람. 김수악의 춤을 따라가다 보면 한 예인의 생애를 넘어 오래된 예향 진주가 품어온 소리와 장단, 몸짓의 시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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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과 소리가 일상이던 아이
김수악은 1925년 12월 10일 태어났다. 전통예술과의 만남은 일찍 시작됐다. 여섯 살 무렵 양금을 배우고 정악을 연주했으며, 아홉 살이던 1933년 진주조선국악양성소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최완자에게 검무와 굿거리, 살풀이춤을 배우고 한성준에게 승무를 익혔다. 춤만 배운 것도 아니었다. 시조와 가곡 같은 정가부터 판소리 다섯 마당, 가야금산조와 병창까지 두루 공부했다. 1939년 양성소를 졸업한 뒤에도 개인교습을 이어갔다. 이게 바로 김수악의 예술을 춤 하나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몸짓의 바탕에는 소리가 있었고, 소리 안에는 장단이 있었다. 양금과 가야금을 익힌 손, 판소리와 정가를 배운 귀, 춤을 몸에 새긴 시간이 한 사람 안에서 만나 하나의 예술을 만들었다.
진주의 춤을 몸에 새긴 사람
김수악의 이름과 함께 가장 먼저 떠오르는 춤은 진주검무와 진주교방굿거리춤이다. 진주검무는 칼을 들고 추는 춤이지만 힘만을 앞세우지 않는다. 칼을 쥔 손과 발의 움직임, 장단 사이에서 멈추고 나아가는 호흡, 여럿이 함께 만들어내는 선이 중요하다. 단단하면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품격이 있다. 김수악은 1967년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오랜 시간 몸으로 익혀온 춤이 한 사람의 기량을 넘어 전승해야 할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은 순간이었다. 그의 또 다른 대표 춤은 진주교방굿거리춤이다. 검무가 절제와 긴장의 결을 품고 있다면, 교방굿거리춤에서는 보다 유연한 흥과 멋이 살아난다. 장단을 타고 이어지는 몸짓, 부드럽게 흘러가는 손끝, 흥을 품으면서도 지나치지 않는 절제가 함께한다. 1997년 김수악은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21호 진주교방굿거리춤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검무와 굿거리춤은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김수악의 몸 안에서는 하나의 예술로 이어졌다. 절도와 흥, 긴장과 이완. 진주의 춤이 품은 서로 다른 결이 한 예인의 생애 안에서 함께 살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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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춤에서 여러 사람의 춤으로
김수악의 삶은 무대에만 머물지 않았다. 1955년, 서른 살의 김수악은 진주에 민속예술학원을 열었다. 경상남도 최초의 민속예술학원이었다. 이후 1973년 진주 전통민속예술원을 세웠고, 진주시립국악원과 진주시립국악학교에서 후학을 지도했다. 대학에서도 기악과 민속무용을 가르쳤으며, 1989년에는 진주시립국악예술단 창단에도 참여했다. 1983년부터 2005년까지는 한국국악협회 진주시 지부장을 맡았다. 전승은 특별한 어느 날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하나의 동작을 되풀이하고, 장단을 익히고, 스승의 몸을 바라보며 자신의 몸으로 다시 옮기는 무수한 시간이 쌓여야 한다. 김수악도 그렇게 배웠고, 다시 그렇게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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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부터 2009년까지 이어진 ‘춘당 김수악 전통춤강습회’는 그가 말년까지도 제자들을 가르치는데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를 보여준다. 무대에서 한순간 피어났다가 사라지는 춤을 다시 불러내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스승의 발 디딤을 기억한 제자의 발이 다시 땅을 딛고, 스승의 손끝을 바라봤던 눈이 다음 몸짓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김수악에게 전승은 과거를 그대로 보존하는 일에만 머물지 않았다. 자신에게 도착한 춤이 자신에게서 끝나지 않도록. 김수악 역시 그렇게 자신이 받은 것을 다음 사람에게 건넸다.
진주가 품고, 김수악이 지켜낸 춤
김수악은 2009년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의 춤까지 그날 멈춘 것은 아니었다. 그가 어린 시절 익혔던 장단과 소리, 스승에게 배운 몸짓은 평생의 무대와 교육을 거쳐 수많은 사람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오늘 다시 누군가 진주검무의 칼을 들고, 진주교방굿거리춤의 장단에 몸을 맡긴다. 그 움직임 속에는 한 사람의 생애뿐 아니라 그보다 앞선 사람들의 시간까지 함께 포개져 있다. 남강이 흐르고 오래된 예술의 자취가 남아 있는 도시 진주. 김수악의 삶 역시 그 도시와 떨어뜨려 생각하기 어렵다. 진주는 어린 김수악에게 춤과 소리를 가르친 곳이었고, 김수악은 평생 그 예술을 배우고 가르치며 다시 진주에 돌려주었다. 춤은 머물지 않는다. 순간마다 모습을 바꾸며 흘러간다. 그러나 몸에서 몸으로, 장단에서 장단으로 이어지는 동안 사라지지 않는 것도 있다. 그래서 진주에 남은 김수악의 가장 큰 작품은 어쩌면 한 편의 춤이 아닐지도 모른다. 자신이 받아온 춤을 평생 몸에 품었다가 다음 사람에게 건넨 것. 한 사람의 몸에서 시작해 수많은 몸으로 이어지게 한 것. 그렇게 김수악이 지켜낸 춤은 오늘도 진주에서 다시 움직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