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트렌드 [경남의 오래된 미래] 사라질 것인가, 남겨질 것인가. 마산 원동무역 사옥이 묻는 도시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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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82 / 26-07-31 글 신혜원 사진 백동민・한국내셔널트러스트본문
도시는 거대한 기억의 저장고다. 사람들이 나고 자라며 부대낀 삶의 흔적들은 오래된 건축물의 외벽에 마치 나이테처럼 새겨진다. 하지만 이 기억의 흔적은 때로 자본과 개발이라는 시대의 파도 앞에서 너무도 쉽게 쓸려나간다. 낡고 오래된 것을 지우고 그 자리에 새로운 건물을 올리는 효율성의 논리 속에서 도시는 종종 자신이 품어온 고유한 역사를 잃어버리곤 한다. 마산 원도심 한복판에서 철거 위기에 놓인 ‘원동무역 사옥’은 우리에게 또 한 번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마산의 상업적 번영과 시대의 굴곡을 지켜본 이 대표적인 근대 상업건축물이 과연 이대로 사라져도 괜찮은 것일까? 우리는 지금, 한 도시의 정체성을 담보하는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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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증언자, 철거 위기에 처하다
마산 원동무역 사옥은 단순히 오래된 벽돌 건물이 아니다. 1919년, 독립지사인 옥기환, 명도석 등이 설립한 일제 강점기 마산 지역 최초의 주식회사 원동무역의 본사로 1928년에 준공된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이다. 당시 이 기업은 쌀, 곡물, 해산물 등을 취급하며 거둔 수익을 상해 임시정부 등 독립운동 자금으로 지원하고, 마산중앙고, 창신고 등 지역 교육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일제강점기 마산 시민들에게는 민족적 자긍심의 상징이었으며, 해방 후 마산 교육청, 6·25 전쟁 당시 미 육군 사단 인사처로 사용되며 마산이라는 지역의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간직해 왔다. 하지만 세월의 무게를 견뎌낸 이 역사적 건축물도 ‘노후화’와 ‘부동산 가치 하락’이라는 현실의 벽 앞에서는 위태롭기만 하다. 오랜 시간 지역의 일상과 함께 호흡해 왔으나 개인 소유로 뚜렷한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한 채 1층 일부만 식당으로 운영될 뿐, 2~3층은 오랜 기간 공실로 방치되어 철거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건물이 사라진다는 것은 곧 그 공간이 품고 있던 시대적 가치와 마산 사람들의 민족적 자긍심마저 통째로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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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적 한계 속에서 목소리를 내는 시민들
이미 마산의 ‘삼광청주 공장’이나 진해 ‘이애숙 가옥’처럼 귀중한 근대건축물들이 개발의 논리 속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선례가 있다. 우리가 머뭇거리는 사이 도시의 귀중한 흔적들이 무참히 허물어진 것이다. 현재 원동무역 사옥을 지키기 위해 지역 사회는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창원특례시지역건축사회와 시민단체들은 역사적, 건축사적 가치를 강조하며 이 건물을 창원시 ‘근대건조물’로 지정해 법적 보호 기반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역시 보전의 시급성을 알리기 위해 원동무역 사옥을 올해 '이곳만은 지키자!' 대상 지역으로 선정했다. 하지만 창원시는 보존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다른 문화재와의 형평성을 이유로 당장의 매입은 어렵다는 입장을 밝혀 '근대건조물 보호 조례'의 범위와 예산 지원에 대한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제도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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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보존을 넘어, 미래로 이어지는 정체성의 다리
오래된 건물을 남기는 일은 과거의 멈춘 시간을 억지로 연장하는 맹목적인 ‘보존’이 아니다. 지역의 역사와 정체성을 미래 세대에게 건네주는 가장 확실한 방식이다. 양산의 ‘목화당 1944’나 통영의 ‘근대역사문화공간’이 증명하는 듯이 허물고 새로 짓는 쉬운 길 대신 보존하고, 고쳐 쓰는 수고로운 길을 택했을 때 공간은 비로소 ‘오래된 미래’가 된다. 지역의 근현대사를 간직한 공간에 현대의 세련된 감각을 덧입혀 새로운 쓰임을 부여할 때 오래된 건축물은 새로운 문화 플랫폼이자 도시를 대표하는 대체 불가능한 자산이 되는 것이다.
사라질 것인가, 남겨질 것인가
지금 마산 원동무역 사옥은 지역이 또 한 번 고유의 색을 잃어버릴 것인지 아니면 과거의 뼈대 위에 내일의 문화를 꽃피울 수 있을 것인지 우리를 향해 묻고 있다. 이곳을 허물거나 남기는 선택은 온전히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몫이다. 경남의 오래된 근대건축물들이 철거의 위협에서 벗어나 지역사회를 대표하는 살아있는 역사 공간으로 거듭난다면 단순히 과거의 흔적을 지키는 일을 넘어 지역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미래 세대에게 물려주는 뜻깊은 유산이 될 것이다. 원동무역 사옥의 내일이 경남이 품게 될 또 하나의 '오래된 미래'로 남기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