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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82 발행월 : 2026.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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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트렌드 [경남설화기행] 의령 도깨비숲 설화 - 한우산 쇠목이와 철쭉이 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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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82 / 26-07-31 글 김보배 사진 의령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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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는 두루야. 경남 여기저기를 떠돌며 오래된 이야기를 모으는 도깨비지. 오늘은 말이야, 보따리를 메고 의령 한우산에 올라왔어. 한우산. 이름부터 좀 서늘하지? ‘찰 한(寒)’에 ‘비 우(雨)’. 산이 깊고 숲이 울창해서 한여름에도 찬비가 내린다는 뜻이래. 이름만 들으면 우산을 챙겨야 할 것 같지만, 사실 이 산에 올라와 먼저 만나는 건 비보다 바람이야. 나무 사이를 지나온 바람이 귀밑을 간질이고, 철쭉 숲 사이로는 분홍빛 꽃잎들이 살랑살랑 고개를 흔들거든. 그런데 이상했어. 분명 혼자 걷고 있는데, 자꾸 누가 뒤에서 따라오는 것 같은 거야. “두루야.” 응? 누가 내 이름을 부르네? “두루야, 남의 숲에 왔으면 인사부터 해야지.” 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어. 그런데 아무도 없는 거야. 대신 철쭉 덤불 사이로 삐죽 솟은 뿔 같은 게 보였어. 그 아래로 커다란 눈, 씰룩거리는 코, 그리고 장난기 가득한 입꼬리. 아하, 알겠다. 여긴 그냥 숲이 아니었어. 바로 도깨비 쇠목이가 사는 도깨비숲이었지. “너 혹시 쇠목이야?” “그래. 내가 바로 한우산 대장 도깨비 쇠목이다.” “반가워, 쇠목아! 난 사실 오늘 널 만나러 여기에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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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도령과 응봉낭자, 그리고 도깨비 쇠목이

사실 이 한우산 숲에는 오래된 사랑 이야기가 숨어 있어. 지금처럼 길도, 안내판도, 조형물도 없던 시절. 그저 산과 바람, 나무와 꽃이 이곳을 지키던 때였지. 이곳에 한우도령과 응봉낭자가 살고 있었어. 한우도령은 마음이 곧고 따뜻한 청년이었고, 응봉낭자는 달빛처럼 곱고, 철쭉꽃처럼 환한 사람이었대. 두 사람은 서로를 아끼고 사랑했어. 산길을 걷는 발걸음만 들어도 서로를 알아볼 만큼 아주 가까운 사이였지.


그런데 응봉낭자를 좋아한 이가 또 있었어. 바로 도깨비 쇠목이야. 그것도 아주 많이 말이야. 쇠목이는 도깨비였지만, 마음을 전하는 데는 제법 인간적인 방법을 골랐어. 바로 망개떡이었지. 망개떡, 들어봤지? 청미래덩굴 잎으로 찰떡을 감싼 의령의 대표 향토음식이야. 망개잎의 은은한 향이 떡에 배어들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 쇠목이는 그 망개떡을 정성껏 만들어서 응봉낭자에게 건넸어. 자신의 진심을 알아주길 바라면서. 하지만 응봉낭자의 마음은 이미 한우도령에게 가 있었어.


“고마워요. 하지만 제 마음은 정해져 있어요.” 그 말에 쇠목이는 크게 상처를 받았어. 좋아하는 마음이 거절당하자, 서운함은 질투가 되고 질투는 분노가 되었지. 결국 쇠목이는 한우도령을 해치고 말았대. 이를 알게 된 응봉낭자는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어. 그러자 한우산의 정령들은 두 사람을 그냥 둘 수 없어 응봉낭자는 철쭉꽃으로, 한우도령은 비구름으로 만들었다고 해. 비가 되어 꽃을 적시고, 꽃이 되어 비를 기다리게 한 거지. 좀 슬프지?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야. 쇠목이는 뒤늦게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어. 후회는 꼭 일이 끝난 뒤에 찾아오잖아. 잡으려고 할 때는 보이지 않다가, 놓치고 나면 온 산을 뒤덮는 안개처럼 밀려오는 법이지. 쇠목이는 응봉낭자가 변한 철쭉꽃을 바라봤어. 그리고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그 꽃잎을 삼켰대. 하지만 철쭉에는 독이 있었고, 쇠목이는 결국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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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쭉 숲길에 남은 이야기

지금도 한우산 도깨비숲에는 이 설화가 조형물과 숲길로 이어져 있어. 한우도령과 응봉낭자의 사랑, 쇠목이의 질투, 철쭉이 된 응봉낭자와 비구름이 된 한우도령의 이야기가 산책로 곳곳에 담겨 있지. 봄이면 한우산은 철쭉으로 붉게 물들어. 그 풍경을 보고 있으면 옛사람들이 왜 이 산에 사랑과 도깨비 이야기를 남겼는지 조금 알 것 같아. 꽃은 그냥 피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처럼 피어난다고 믿었던 거겠지. 그래서 나도 철쭉 숲길을 천천히 걸어봤어. 한 걸음마다 이야기가 따라오더라고.


여기서는 쇠목이가 망개떡을 들고 서 있었고, 저기서는 한우도령과 응봉낭자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고, 조금 더 내려가면 꽃잎을 문 쇠목이가 깊은 잠에 빠져 있었어.  그러니까 이 길은 그냥 예쁜 산책길이 아니야. 도깨비의 고백이 있고, 사람의 사랑이 있고, 꽃이 된 눈물이 있고, 비가 된 기다림이 있는 길이야. 나는 도깨비숲을 내려오며 다시 쇠목이를 돌아봤어. “쇠목아, 아직도 자고 있는 거야?” 대답은 없었어. 대신 철쭉잎이 바람에 살짝 흔들렸지. 꼭 누군가 잠결에 뒤척이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보따리를 고쳐 메고 말했어. “그래, 더 자. 대신 네 이야기는 내가 들고 갈게.” 혹시 의령 한우산에 가게 되면 철쭉 숲길을 천천히 걸어봐. 덤불 사이에서 누가 킥킥 웃는 소리가 들릴지도 몰라. 너무 놀라지는 마. 아마 쇠목이일 거야. 아니면, 나 두루일지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