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트렌드 [지금트렌드] 전통이 곧 힙! K-컬처의 다음 장면, K-크래프트
페이지 정보
vol. 81 / 26-06-30 글 김보배 사진 서정도예•국립박물관문화재단 뮷즈본문
전통 공예품을 사기 위해 박물관 굿즈 매장 앞에 줄을 선다. 민화 속 호랑이는 배지가 되고, 반가사유상은 미니어처로, 자개와 도자, 한지는 일상 소품과 공간 디자인에 쓰인다. 이른바 K-크래프트의 시대다. 전통은 더 이상 유물장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사람들이 사고, 선물하고, 직접 만들어보는 물건이 되면서 K-컬처는 또 다른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
영화가 부르고, 굿즈가 답하다
작년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K팝과 판타지 서사에 무속, 민화, 한복, 갓, 호랑이와 까치 같은 한국적 이미지를 결합해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한국관광공사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한국의 전통문화와 여행지를 소개했고, 온라인에서는 갓과 호랑이, 까치 같은 이미지가 다시 주목받았다. 그 관심은 박물관 굿즈 시장에서도 확인됐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의 박물관 상품 브랜드 ‘뮷즈(MU:DS)’는 2025년 연 매출 400억 원을 처음 돌파했다. 까치와 호랑이 배지,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석굴암 조명 같은 상품은 박물관을 찾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됐다. 유물을 보기 위해 박물관에 가던 사람들이 이제는 유물을 바탕으로 만든 상품을 사기 위해 박물관을 찾았다. 전통문화가 전시의 대상에서 소비의 대상으로 확장되기 시작한 것이다.
K-컬처, 이제는 손에 쥐는 문화로
그동안 K팝과 K드라마, K푸드가 한국의 이야기와 이미지를 세계에 알렸다면, 최근에는 그 관심이 물건과 공간으로 옮겨가고 있다. 콘텐츠를 통해 익숙해진 한국적 이미지를 실제로 소장하고 싶어 하는 수요가 커지자 영화 속에서 본 갓은 장신구가 되고, 민화 속 호랑이는 배지가 되며, 전통 문양은 패브릭과 생활 소품으로 변신했다. K-크래프트가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예는 한국적인 이미지를 가장 구체적인 형태로 보여준다. 자개의 빛, 도자의 질감, 한지의 결, 옻칠의 깊이는 화면이나 음악만으로는 전해지지 않는 감각이다. 손에 쥐고, 집 안에 두고, 누군가에게 선물할 수 있을 때 전통은 더 가까워진다.
세계 시장으로 향하는 한국 공예
2026년 5월 중국 상하이에서 선보인 〈K-ART CRAFT WITH SHANGHAI〉 전시는 한국 공예가 해외 시장에서 어떻게 소개되고 있는지 보여준다. 한국 공예 시장을 유럽 중심에서 아시아로 확장하겠다는 시도로 기획된 전시에는 한지, 금속, 도자, 유리, 조선가구, 목조각, 옻칠, 섬유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참여했다. 한국 공예의 재료와 기술, 조형성, 공간 연출을 함께 보여주며 예술 작품이자 생활 속 사물로서의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한지와 옻칠, 도자와 섬유는 한국적 정체성을 지닌 재료이면서, 해외 컬렉터와 소비자에게는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읽힌다. 오래된 재료가 낡은 방식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바로 그 가능성이 한국 공예의 힘이다.
![]()
![]()
![]()
경남에도 K-크래프트가 있다
경남에도 오래된 기술을 오늘의 감각으로 이어가는 공예 자산이 있다. 바로 통영의 나전칠기. 나전칠기는 전복과 조개껍질을 얇게 가공해 옻칠한 표면에 붙이는 전통 공예로, 빛의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자개의 색과 결이 특징이다. 과거에는 장롱, 함, 장식장 같은 고급 가구 중심으로 소비됐지만, 지금은 액세서리와 소품, 체험 프로그램 등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런 시대 흐름에 발맞춰 통영전통공예관에서는 시민과 관광객, 외국인을 대상으로 나전칠기 체험을 운영하고 있다. 참가자는 전복껍질과 조개껍질 등을 활용해 목걸이, 휴대전화 고리 같은 일상 소품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다. 전통 공예를 눈으로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손으로 익히는 경험으로 확장한 것이다.
김해에서도 눈여겨볼 만한 사례가 있다. 서정도예 박현서 작가가 만든 도예품 〈행운의 북어〉다. 북어는 예부터 액운을 막고 행운을 부르는 상징물로 여겨졌다. 서정도예는 이 상징을 현대적인 도예 기념품으로 재해석했다. 〈행운의 북어〉는 2025년 대한민국 관광기념품 공모전 공예 부문 장려상을 받았고, 2025년 경주 APEC 정상회담 기간 기념품 전시장에도 전시됐다. 이후 국가관광전략회의 전시에도 소개되며 지역 공예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 성과가 의미 있는 이유는 지역의 도예 기술과 전통 상징, 관광기념품 시장이 하나로 만났기 때문이다. K-크래프트는 반드시 고가의 작품이나 대형 전시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여행지에서 살 수 있는 기념품, 책상 위에 놓는 작은 오브제, 누군가에게 건네는 선물 속에서도 충분히 힘을 발휘한다.
![]()
오래된 기술이 오늘의 트렌드가 될 때
K-크래프트의 확산은 전통 공예가 살아남는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보존만으로는 공예의 미래를 만들기 어렵다. 오늘의 사람들이 쓰고, 사고, 경험할 수 있는 형태가 될 때 공예는 새로운 수요를 만난다. 경남의 공예도 마찬가지다. 통영의 자개, 김해의 도자처럼 지역마다 오랫동안 이어온 재료와 기술이 있다. 중요한 것은 그 가치를 설명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 일이다. 생활 속에서 쓰일 수 있는 상품, 여행과 연결되는 체험, 지역의 이미지를 담은 기념품으로 확장될 때 지역 공예는 더 넓은 시장을 만날 수 있다.
전통이 곧 힙이라는 말은 오래된 것을 유행처럼 소비하자는 뜻이 아니다. 오래 이어온 기술이 오늘의 감각을 만나 새롭게 쓰이고, 또 다른 창작의 출발점이 된다. 그 안에는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전통의 아름다움을 이어가려는 마음이 함께 담겨 있다. 손끝에서 태어난 작은 물건 하나가 지역의 이야기를 품고, 한국의 미감을 전하고, 세계의 일상으로 건너가는 일. 지금 K-크래프트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