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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79 발행월 : 2026.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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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트렌드 [경남설화기행] 지리산 산신 설화 - 지리산 성모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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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79 / 26-04-23 글 김보배 사진 산청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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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는 두루야. 경남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오래된 이야기를 모으는 도깨비지. 오늘은 말이야, 이 보따리를 들고 지리산에 올라왔어. 지리산에는 참 신기한 이야기가 많거든. 방금도 바위 틈에서 돌 하나를 발견했는데…. 글쎄, 가까이 가 보니까 사람 얼굴처럼 생긴 석상이더라고. 맞아. 이게 바로 지리산 성모상이야. 지리산을 지키는 산신, 사람들이 ‘천왕 할머니’라고 부르던 그 산신 말이야. 그래서 나는 슬쩍 성모상에 손을 얹어봤어. 그랬더니 말이야, 이 성모상에 담긴 아주 오래된 이야기들이 툭툭 튀어나오기 시작하는 거야. 근데 이 성모상에 얽힌 이야기가 한 두 개가 아니더라고. 궁금하지? 지금부터 내가 하나씩 들려줄게.




천왕봉은 왜 늘 반야봉을 바라볼까

첫 번째 이야기는 ‘기다림’에 대한 이야기야. 너 지리산에 천왕봉이랑 반야봉 있는 거 알지? 지리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가 천왕봉, 그 다음으로 유명한 봉우리가 반야봉이야. 아주 옛날에는 말이야. 이 두 봉우리에도 산신이 따로 있었다고 해. 천왕봉에는 여신, 반야봉에는 남신. 쉽게 말하면 서로 부부 같은 사이였던 거지. 그런데 어느 날, 반야봉의 산신이 떠나면서 이렇게 말했대.


“곧 돌아오겠소.”


그래서 천왕봉의 여신은 그를 기다리기 시작했어.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해가 바뀌어도 여신은 계속 반야봉을 바라보고 있었대. 옛사람들은 이걸 ‘일구월심(日久月深)’, 날이 가고 달이 가도 마음이 변하지 않는 기다림이라고 했어. 그렇게 기다림이 이어지던 어느 가을밤이었대. 멀리 백무동 쪽 산에서 하얀 것이 펄럭이는 게 보였어. 여신은 그걸 보고 가슴이 뛰었지.


“드디어 왔구나!”


그런데 가까이 가 보니 사람이 아니었어. 바람에 흔들리던 왕새풀이었거든. 왕새풀은 말이야, 가을에 피는 하얀 꽃인데, 멀리서 보면 꼭 흰 옷자락이 펄럭이는 것처럼 보여. 그래서 여신이 그걸 보고 착각했던 거지. 그 때 화가 머리끝까지 난 여신은 이렇게 말했대.


“나를 속였으니 이 꽃은 앞으로 이 산에서 피지 못하리라.”


그래서 지금도 그곳에는 왕새꽃이 없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와.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야.  여신은 그를 기다리며 모시베를 짜려고 모시를 갈라놓고 있었는데... 알지? 옛날에는 옷을 만들려면 모시 줄기를 쪼개서 실을 만들어야 했거든.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그가 돌아오지 않자 여신이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대. “오지 않는 이의 옷은 지어 무엇하랴.” 그리고 모시를 확 던져 버렸다고 해. 그 모시실이 바람에 날려 지리산 나무와 바위에 걸렸는데 지금 천왕봉 근처에 가면 나무에 하얀 실 같은 식물이 늘어져 있거든. 그래서 사람들은 그걸 ‘천왕 할머니 모시갈래’라고 부른다는 거지. 좀 슬프지? 도대체 반야봉 남신은 왜 돌아오지 못한 걸까. 그건... 아무도 모른대. 그저 천왕봉은 지금도 반야봉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지. 그런데, 성모상에 얽힌 이야기는 이게 끝이 아니야. 또 다른 이야기도 꽤 흥미롭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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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서 시작된 인연

옛날에 법우화상이라는 스님이 지리산에서 수행을 하고 있었대. 그런데 어느 날 비도 안 오는데 계곡에 갑자기 물이 넘치기 시작한 거야. “이 물은 어디서 오는 걸까?” 스님은 물길을 따라 산 위로 올라가 보기로 했어. 그렇게 계속 올라가다 천왕봉까지 가게 됐는데 거기서 아주 크고 힘센 여인을 만나게 된거야. 그 여인이 바로 지리산 성모였대. 성모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하지. “내가 물길을 내려 당신을 여기로 부른 것이오.” 결국 두 사람은 부부의 연을 맺게 됐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전국 팔도에 퍼져 무당이 되었다는 전설도 전해 내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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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성모상, 지금도 이어지는 이야기

재밌는 건 말이야. 지리산의 산신은 다른 산들과 달리 여성의 모습으로 전해진다는 거야. 단순히 산을 지키는 신이 아니라 사람들을 돌보고 인연을 맺고 마을을 지켜주는 어머니 같은 존재였던 거지. 그래서 사람들은 지리산 산신을 ‘지리산 성모’라고 불렀어. 그리고 그 모습을 돌로 만들어 산에 모셨지. 그게 바로 지리산 성모상이야. 이 성모상은 오랫동안 천왕봉 근처에 있었는데 지금은 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천왕사’에 보관돼 있어. 돌로 만든 석상인데 높이가 약 1미터 정도 되고 통통한 얼굴에 머리를 틀어 올린 모습이 특징이야. 원래는 천왕봉 정상 부근에 모셔져 있었지만 1970년대 머리 부분과 몸체가 나뉘어 분실된 것을 1987년 천왕사 주지 혜범 스님이 다시 찾아 복원, 절에 모신 것으로 전해져. 현재 경상남도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지. 지리산 사람들은 예부터 이 성모를 산신으로 모셨거든. 그래서 봄과 가을이 되면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며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빌었다고 해. 지금도 천왕사에서는 성모에게 제를 올리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어.


그리고 사람들은 여전히 지리산에 오르면 조용히 두 손을 모아. 산을 지키는 존재에게 안녕을 빌기 위해서지. 아까 이 성모상을 만졌을 때 딱 들었던 생각이 있거든. 지리산을 바라보며 살아온 사람들의 마음이 오랫동안 쌓여 만들어진 얼굴이라는 생각 말이야. 만약 지리산에 가게 되면 천왕봉을 한번 바라봐. 어쩌면 지금도 천왕 할머니가 그 산 위에서 지리산을 지키고 있을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