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토크 [메이드 인 경남] 나무의 시간을 잇다 - 진주 소목장 조복래·조 현영 부자(父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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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84 / 26-09-30 글 김보배 사진 백동민본문
나무 한 그루가 가구가 되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진주 명석면 취목공방에서는 그 답을 쉽게 셀 수 없다. 수백 년을 살아온 나무가 생을 다하면 공방으로 옮겨져 다시 긴 시간을 보낸다. 둥치로 몇 년, 판재로 켠 뒤 또 몇 년. 충분히 마르지 않은 나무는 아무리 아름다워도 손댈 수 없다. 빠르면 10년, 어떤 나무는 20년을 넘게 기다린 뒤에야 비로소 장인의 손에 오른다. 그 긴 시간을 견딘 나무 앞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의외로 많지 않다. 이미 나무가 만든 결을 읽고, 가장 아름다운 부분을 찾아내고, 그 모습을 해치지 않도록 손을 보태는 것. 진주 소목장 조복래와 그 뒤를 잇는 아들 조 현영 작가가 대를 이어 해온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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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보다 먼저, 나무를 본다
취목공방의 가구에는 낯선 풍경이 숨어 있다. 먹감나무에는 먹이 번진 듯 검은 무늬가 흐르고, 수백 년 된 느티나무에는 물결이나 용의 눈을 닮은 기이한 문양이 나타난다. 사람이 그려 넣은 것이 아니다. 햇빛과 바람, 계절과 나무가 견뎌온 무게가 오랜 시간에 걸쳐 남긴 흔적이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보통의 가구 제작 순서가 뒤집힌다. 먼저 도면을 그리고 거기에 맞는 나무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나무를 보고 난 뒤 무엇을 만들지 정한다. “이 나무의 문양을 가장 잘 보여주려면 무엇을 만들어야 할까를 먼저 생각해요.”
아들은 이를 두고 “나무가 주인”이라고 말한다. 특별한 무늬가 나타난 판재를 억지로 자르거나 화려한 조각으로 덮지 않는다. 문양의 크기에 따라 문의 크기가 달라지고, 나무의 폭에 맞춰 가구의 비례가 결정된다. 사람의 솜씨를 앞세우기보다 자연이 이미 만들어놓은 것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그 출발에는 기다림이 있다. 공방에 들어온 목재는 곧장 가구가 되지 않는다. 나무마다 상태를 살피며 자리를 옮기고, 계절에 따라 수축하고 팽창하는 힘이 빠질 때까지 기다린다. 특히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 자란 나무는 뒤틀림과 움직임이 커 충분한 건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수백 년을 살아온 나무가 다시 수백 년을 견딜 가구가 되려면 서두르지 않는 것부터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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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곳과 보이지 않는 곳을 똑같이
조복래 소목장이 나무와 함께 살아온 시간은 40년을 훌쩍 넘는다. 1979년 소목에 입문해 고(故) 정돈상, 오행구 선생에게 전통 소목을 배웠고, 이후 진주에서 오랫동안 전통가구를 만들어왔다. 그가 지켜온 방식의 핵심은 화려한 기교보다 기본에 있다. 쇠못에 기대지 않고 나무와 나무를 짜 맞추고, 전통 방식으로 가구의 뼈대를 세운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곳까지 허투루 넘기지 않는다. 그 원칙은 아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졌다. “앞면처럼 늘 보이는 곳이나,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밑바닥이나 똑같이 해야 한다고 하세요.” 조 작가가 아버지에게 배운 가장 중요한 가르침 가운데 하나다. 서랍을 빼야 겨우 보이는 곳, 가구를 뒤집어야 볼 수 있는 밑면까지 같은 정성으로 다뤄야 비로소 한 작품이 완성된다. 또 하나는 자연이 준 재료를 함부로 훼손하지 않는 것이다. 나무가 가진 크기와 결, 문양을 가능한 한 그대로 살리는 것. 결국 두 원칙은 하나로 이어진다. 만드는 사람의 욕심보다 재료를 먼저 생각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물건을 만드는 일이다.
아버지는 지키고, 아들은 넓힌다
같은 작업실에서 같은 나무를 다루지만 두 사람의 시선이 완전히 같지는 않다. 조복래 소목장이 오랫동안 전통가구의 재현과 보존에 힘을 쏟아왔다면, 조 작가는 그 토대 위에서 ‘어떻게 더 많은 사람과 만날 것인가’를 고민한다. 대학에서 가구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15년 넘게 아버지 곁에서 소목을 익혀왔다. 어릴 때부터 당연히 아버지의 뒤를 잇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대학에 진학하고 가구와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 비로소 자신이 이어가야 할 일이 무엇인지 보이기 시작했다. 단, 아버지에게 배운 큰 원칙은 그대로 가져가되, 표현의 폭은 조금 더 넓히고 싶다. 하나의 대형 가구를 만드는 데 1년 가까이 걸리는 작업만으로는 많은 사람에게 작품을 보여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신 크기가 작은 작품, 다양한 형태의 작업으로 소목이 놓일 자리를 넓혀보려 한다. “하나를 한 곳에서 보여주는 것보다 여러 작품을 만들어 여러 곳에서 보여주면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잖아요.”
전통을 바꾼다기보다 만나는 방법을 바꾸는 셈이다. 올해 두 사람의 작업은 서울 북촌에서도 새로운 관객을 만났다. 조복래 소목장이 2026 예올×샤넬 프로젝트 ‘올해의 장인’으로 선정되면서다. 전통 소목이 현대적인 공간과 만났지만, 중심에는 여전히 오래된 나무와 그것을 대하는 장인의 태도가 있었다. 전시장에서도 관람객들이 가장 궁금해 한 것은 화려한 기법이 아니라 나무 자체였다. “조각한 것이냐”, “어떻게 이런 무늬가 나왔느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사람이 만든 장식보다 자연이 수백 년 동안 만든 문양이 먼저 눈길을 잡아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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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에서 계속해야 하는 이유
작가는 앞으로도 진주에서 작업할 생각이다. 진주는 오랫동안 경남의 중심지로 기능하면서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공예가 발달했던 도시다. 가구와 소반뿐 아니라 장도, 염색, 도자 등 여러 분야의 장인과 기술이 이어져왔다. 그에게 진주는 단순한 작업 장소가 아니라 앞선 세대가 축적한 기술과 지혜를 가까이에서 배울 수 있는 터전이다. 전통은 오래된 것을 유리장 안에 고스란히 보관하는 일만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원형을 지키고, 또 누군가는 그 안에서 지금의 쓰임을 찾아야 한다. 조복래 장인이 오랫동안 지켜온 기술 위에서 작가가 새로운 가능성을 고민하는 이유다. 아버지가 전국을 다니며 좋은 나무를 찾아온 시간도 이제 아들에게 이어지고 있다. 길을 가다 잎이 없는 오래된 나무를 보면 눈길부터 간다. 낯선 지역에서 목공방을 발견하면 한 번쯤 들어가 보고, 좋은 나무가 생기면 연락을 달라고 명함을 남긴다. 그렇게 수십 년 동안 쌓은 인연을 따라 전국의 오래된 나무들이 진주의 작은 공방으로 모여든다. 그중 어떤 나무가 언제 가구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10년 뒤일 수도, 20년 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서두를 이유는 없다. 수백 년을 살아온 나무의 시간을 사람의 속도에 맞출 수는 없으니까. 충분히 기다리고, 나무가 보여주는 결을 읽고, 못 하나 없이 단단하게 이어 붙인다. 그리고 그 방법을 다시 다음 사람의 손에 건넨다. 취목공방에서 이어지는 것은 나무와 나무만이 아니다. 한 시대의 기술이 다음 시대의 감각과 만나고, 아버지의 손에서 아들의 손으로 다시 시간이 건너간다. 그렇게 소목장 부자(父子)는 오늘도 오래된 것을 지키면서, 새로운 내일을 만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