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토크 [이 사람이 사는 법] 클래식을 일상으로 - 양산심포니오케스트라 강고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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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84 / 26-09-30 글 김보배 사진 백동민본문
“양산에서는 오케스트라가 안 된다.” 양산심포니오케스트라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을 찾아다니던 시절, 강고은 대표가 들었던 말이다. 하지만 그 한마디가 오히려 마음속에 불을 지폈다. 지역 음악인들이 마음껏 설 수 있는 무대가 없다면 직접 만들어보자고. 그렇게 2022년 양산심포니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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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무대에서, 모두의 무대로
강고은 대표가 처음 바이올린을 손에 쥔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합주부를 맡았던 담임선생님께서 방과 후 아이들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쳐주었고, 호기심에 손을 들었던 것이 시작이었다. 재능을 눈여겨 본 선생님의 권유로 정식 레슨을 시작하면서 음악은 그의 삶 깊숙이 들어왔다. 이후 연주자와 지도자로 오랫동안 한 길을 걸었다. 스스로 표현하자면 ‘생계형 연주자’의 삶이었다. 그러던 중,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활동하던 무렵에 한 선배 음악인이 이런 말을 건넸다. “우리 세대가 터전을 잘 닦아놓지 못해서 젊은 연주자들이 마음껏 일할 자리를 만들어주지 못해 미안하다.” 그 말은 오래 남았다. 시간이 흘러 제자들이 대학을 졸업했지만 지역에서 설 무대는 여전히 많지 않았다. 강 대표 역시 양산에 정착한 뒤 전문 연주자로 활동하려면 부산이나 다른 지역으로 눈을 돌려야 했다. ‘그렇다면 내가 사는 곳에서 무대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그 질문이 2022년 양산심포니오케스트라의 시작이 됐다.
“제 특기가 버티기거든요”
창단 초기에는 자본도, 정기적인 공연 기회도 없었다. 도움을 구하러 찾아간 자리에서는 “양산에서는 오케스트라가 안 되니 빨리 접으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런데 그 말이 오히려 마음속에 불을 붙였다. “반드시 실력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제 특기가 버티기거든요.” 연주자들을 모으고, 가능한 무대를 찾고, 관객을 만나며 시간을 쌓았다. 그 시간이 이어져 2026년 양산심포니는 양산문화예술회관 상주단체가 됐다. 강 대표가 가장 반기는 변화는 연주자들에게 ‘계속 설 수 있는 무대’가 생겼다는 것이다. 지금은 양산청소년오케스트라에서 음악을 배운 학생들이 성장해 다시 지역 무대에 객원 연주자로 서기도 한다. 어린 음악도들에게 “우리 지역에서도 음악가로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강 대표가 처음 이 무대를 만들며 그렸던 미래가 비로소 현실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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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 오케스트라가 있다는 것
양산심포니 단원의 약 70%는 양산 시민이다. 연주자와 관객이 같은 도시에서 살아가기에 시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클래식을 왜 어렵게 느끼는지도 가까이에서 알 수 있다. 그 감각은 자연스럽게 공연 기획으로 이어진다. 양산심포니의 슬로건은 ‘오케스트라, 일상으로 스며들다’이다. 강 대표가 바라는 클래식은 특별한 날 큰마음을 먹고 찾아가는 음악이 아니라 주말 산책처럼 공연장을 찾고,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해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음악이다. “졸리면 잠깐 눈을 감아도 괜찮아요. 좋은 소리가 들리면 그 순간 그냥 빠져들면 되고요.” 지난 8월 선보인 <교향곡 사용설명서>도 그런 생각에서 출발했다. 교향곡을 하나의 ‘제품’처럼 보고 사용설명서를 읽듯 감상 방법을 풀어냈다. 정답을 가르치기보다 관객이 자기 방식으로 음악을 즐기도록 문턱을 낮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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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을 내려놓으면, 엄마가 된다.
공연이 없는 날이면 오전에는 바이올린을 연습하고 오후에는 제자들을 가르친다.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 딸과 밥을 먹고 책을 읽어주며, 일찍 자라고 잔소리도 한다. “그냥 평범한 워킹맘이에요.” 딸과 침대에 나란히 누워 서로의 하루를 이야기하는 시간은 강 대표가 가장 아끼는 순간이다. 힘들 때 기대는 음악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저는 힘들 때 음악을 안 들어요.” 음악을 들으면 자신도 모르게 연주와 구조를 분석하게 돼 오히려 쉬지 못한단다. 대신 가장 확실한 회복법은 딸을 힘껏 끌어안는 일이다.
양산심포니에는 강 대표처럼 음악과 육아를 함께 이어가는 ‘엄마 예술인’이 많다. 무대에 오르기까지 필요한 것은 연습과 열정만이 아니다. 아이를 맡길 곳을 찾고, 공연에 드는 비용을 감당하는 일까지 여전히 예술가 개인의 몫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강 대표 역시 오랫동안 그런 현실을 직접 겪어왔다. 그래서 그는 좋은 예술가들이 삶의 부담 때문에 무대를 떠나지 않도록, 오래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양산의 풍경을 음악으로 남기다
강 대표가 앞으로 만들고 싶은 것은 ‘양산에서 연주되는 음악’을 넘어 ‘양산을 담은 음악’이다. 오는 10월에는 양산의 자연과 역사, 문화유산을 클래식 음악으로 재해석한 창작 음악회 <소리로 그린 양산 12경>을 선보일 예정이다. 도시의 풍경을 음악이라는 언어로 기록하고, 다시 그 도시의 시민들이 듣게 하는 작업이다. 공연 형식도 넓혀갈 계획이다. 건물의 층마다 클래식, 재즈, 체임버 음악 등 서로 다른 장르를 배치해 관객이 취향에 따라 고르는 ‘레이어드 음악회’도 구상하고 있다. 강 대표는 AI와 개인화 미디어가 발전할수록 오히려 라이브 음악의 가치가 더 커질 것이라 믿는다. 같은 공간에서 연주자의 숨소리를 듣고 관객과 눈을 맞추는 경험만큼은 화면이 대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늘의 무대가 누군가의 미래가 되도록
강고은 대표는 하나의 예술단체가 자기 색깔을 갖기까지 적어도 10년은 필요하다고 말한다. 양산심포니는 이제 막 네 살이다. 앞으로는 퇴근길 시민이 잠시 공연장을 찾고, 주말이면 가족이 나들이 삼아 공연을 보는 문화가 양산에 자리 잡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어린 음악도들에게 양산심포니가 구체적인 미래가 되었으면 한다. ‘나도 언젠가 저 무대에 서고 싶다.’ 지금 객석에 앉아 있는 한 아이가 그런 마음을 품고, 훗날 연주자가 되어 다시 이 도시의 무대에 서는 것. 강 대표가 꿈꾸는 가장 아름다운 순환이다. 그는 음악하며 사는 삶을 특별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성실히 걷는 것일 뿐이라고. 무대를 준비할 때마다 불안하고 때로는 외롭지만, 음악은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살아가게 만든다고 믿는다.
처음 바이올린을 들던 초등학생에서 연주자가 되고, 이제는 누군가가 설 무대를 만드는 사람이 됐다. 그 긴 시간 동안 강 대표가 해온 일은 어쩌면 참 한결같다. 그래서 오늘도 읊조린다.
‘그냥 하는 거지, 뭐.’ 무대를 만들고, 다시 다음 무대로 걸어가는 것. 그렇게 한 사람의 꾸준한 걸음이 양산의 일상에 조금씩 음악을 들여놓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