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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80 발행월 : 2026.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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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토크 [이 사람이 사는 법] 무대가 끝난 뒤에도 창원의 밤을 밝히는 사람 - 최성진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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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80 / 26-05-29 글 김보배 사진 백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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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아트홀의 밤은 길다. 객석의 불이 모두 꺼진 뒤에도 무대 위에는 작은 움직임들이 남아 있다. 악보를 다시 넘기는 소리, 조명을 조율하는 손길, 비어 있는 객석을 바라보며 마지막 음향을 확인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끝까지 무대를 떠나지 않는 한 사람이 있다. “조금만 더 해봅시다.” 짧은 한마디 뒤로 다시 음악이 흐른다. 〈원더랜드 in 창원〉, 〈해피 크리스마스 콘서트〉 등 굵직한 공연을 연이어 흥행시키며 지역 공연계의 흐름을 바꿔온 최성진 예술감독. 그는 지금 창원이라는 도시 안에서 ‘공연을 만든다’는 것의 의미를 새롭게 써 내려가고 있다. 단순히 공연 한 편을 올리는 일을 넘어, 지역에서도 충분히 수준 높은 콘텐츠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사람. 무대 위 화려한 조명 뒤에는 그렇게 오래 버텨온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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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좋은 공연은 늘 서울에만 있을까 

최성진 감독의 작업은 늘 하나의 질문에서 출발했다. “왜 경남의 관객은 좋은 공연을 보기 위해 서울까지 가야 할까.” 그 질문이 결국 지금의 무대를 만들었다. 그는 지역에도 충분한 연주자와 인프라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다만 문제는 콘텐츠였다. 공연장이 지나치게 클래식 중심으로만 머물러 있었고, 대중들이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공연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래서 그는 과감히 방향을 틀었다. 지브리, 디즈니, 영화 OST 같은 익숙한 음악들을 오케스트라와 결합해 지역 공연장의 문턱을 낮추기 시작했다. 어렵고 낯선 공간이 아니라, 누구나 편하게 들어와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공연장을 바꾸고 싶었다. 그 시도는 곧 관객의 반응으로 돌아왔다. 〈OST 콘서트〉 시리즈는 1,600석 전석 매진이라는 기록으로 이어졌고, 지역 공연도 충분히 흥행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 성과는 최 감독에게 다음 무대로 나아갈 힘이 됐다. 오는 5월 30일 성산아트홀 대극장에서 열리는 〈원더랜드 in 창원〉 역시 그 연장선 위에 있다. 익숙한 음악으로 관객을 초대하고, 오케스트라의 힘으로 상상의 세계를 확장하는 무대. 몇 년간 쌓아온 그의 실험이 어떤 완성도로 펼쳐질지 기대되는 이유다.


예술과 행정을 동시에 움직이는 사람

최 감독의 하루는 쉴 새 없이 바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단순히 연출만 하지 않는다. 기획과 예산, 편곡, 디자인, 홍보, 지휘까지 대부분의 공정을 직접 움직인다. 그는 자신의 작업 방식을 “1인 총괄 프로듀서 체제”라고 표현했다. 예술적 상상을 실제 무대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창작뿐 아니라 현실적인 행정과 운영까지 모두 이해해야하기 때문이다. “눈을 뜨고 있는 모든 순간이 예술적 상상을 행정적 실체로 바꾸는 과정”이라는 그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그는 공연 제작과 동시에 청년 오케스트라 운영도 병행하고 있다. 더불어 내년 항일독립운동가 괴암 김주석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뮤지컬 제작도 준비 중이다. 작품의 주요 넘버 작곡과 드라마 구조 설계 역시 전부 그의 몫이다.


지역 공연의 한계를 깨는 방식

최 감독의 공연은 늘 대중성과 실험성 사이를 오간다. 대표적인 예가 오케스트라 음향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풍성한 사운드를 위해서는 연주자 수를 늘려야 하지만, 그는 정교한 음향 시스템을 적극 활용해 적은 인원으로도 훨씬 웅장한 사운드를 구현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오케스트라도 마이크를 통해 더 좋은 소리를 만들 수 있다”는 발상은 클래식 공연계에서는 꽤 파격적인 시도였다. 하지만 그는 기술과 예술의 접점을 통해 지역 공연의 현실적 한계를 돌파하려 했다. 그 배경에는 늘 예산 문제가 존재했다. 지역 공연은 공모 사업 예산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는 실제로 사비를 털어 공연을 이어온 시간들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할까 밤새 계산기를 두드리던 순간들. “이제 그만할까 싶었던 적도 있었다.”는 솔직한 그의 고백이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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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늙어가고 싶은 오케스트라

그가 운영하는 청년 오케스트라도 거창한 비전으로 시작된 팀이 아니었다.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재미있는 일을 우리끼리 해보자.” 그 마음 하나로 모인 사람들이 지금까지 함께 무대를 만들고 있다. 최 감독은 지금의 단원들을 두고 “실버 오케스트라가 될 때까지 함께 가고 싶은 운명 공동체”라고 표현했다. 흥미로운 건 팀의 분위기다. 흔한 도제식 구조나 수직적인 위계가 거의 없다. 대표부터 막내 단원까지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고, 무대 아이디어 역시 토론을 통해 완성된다. 그는 이런 구조 자체가 팀의 가장 큰 경쟁력이라고 말한다. “지시가 아니라 대화로 무대를 만든다”는 그의 말처럼, 따가다가 아트컴퍼니의 작업 방식은 사람의 에너지를 중심에 둔다. 그래서인지 공연 제작보다 오케스트라 운영이 훨씬 더 어렵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공연 제작이 설계라면, 오케스트라 운영은 살아 있는 생명체를 다루는 일에 가깝거든요.” 그의 말에는 수많은 사람의 감정과 호흡을 조율해야 하는 리더의 고민이 담겨 있었다. 


결국 다시 무대로 돌아오게 하는 것

그럼에도 그를 다시 움직이게 만드는 건 결국 관객이다. 암전이 걷히고 쏟아지는 박수 소리, 공연이 끝난 뒤 이어지는 환호, 그리고 “다음 공연도 기다린다”는 관객들의 이야기들. 그는 그 순간마다 다시 무대를 만들 이유를 찾는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 경상남도 문화상과 창원시 문화상을 동시에 수상한 일은 큰 전환점이었다. 단순한 개인의 성취를 넘어, 자신이 걸어온 시간이 지역 문화의 가치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무겁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제는 보여주기 위한 성과보다,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예술을 남기고 싶어요.” 그의 말에서는 이전보다 더 단단해진 태도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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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에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무대 밖에서 그는 열 살 딸아이에게 늘 미안한 아버지이기도 하다. 항상 바쁜 아빠의 모습을 보고 딸은 종종 이렇게 묻는다고 한다. “아빠는 왜 집에서도 퇴근을 안 해?” 지금은 웃으며 얘기하지만 처음엔 정말 마음 아픈 질문이었다. 그래서 요즘 그는 일주일에 한 번 꼭 가족과 함께 창원 NC파크를 찾는다. 아내와 딸, 그리고 자신까지 모두 NC 다이노스의 열렬한 팬. 함께 응원가를 부르고 야구를 보며 보내는 시간이 지금의 삶을 버티게 하는 가장 큰 휴식이라고 한다. 


그는 스스로를 이렇게 정의했다. 

“저는 무대 위에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 늘 노력하는 사람이에요.” 짧지만 오래 남는 말이었다. 누군가는 지역 공연의 한계를 먼저 이야기하지만, 그는 여전히 가능성을 먼저 이야기한다. 더 좋은 공연을 위해 새벽까지 악보를 붙들고, 더 많은 사람들이 공연장을 찾을 방법을 고민하고, 지역에서도 충분히 수준 높은 콘텐츠가 탄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끝내 증명하려는 사람. 오늘도 최성진 감독은 아마 또 누군가보다 늦게까지, 마지막 음 하나를 붙들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