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토크 [이 사람이 사는 법] 무대는 사람으로 이어진다 - 37년, <극단 메들리>를 지켜온 김은민 대표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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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78 / 26-03-30 글 김보배 사진 백동민본문
무대 위에서 웃음이 터진다. 경로당을 짓겠다는 마을 사람들의 좌충우돌 계획, 예상치 못한 해프닝이 이어지고 객석에서도 웃음과 탄식이 번갈아 터진다. 배우들의 대사는 밀양 사투리와 생활 언어로 살아 움직인다. 최근 열린 경남연극제에서 극단 메들리가 선보인 작품 <웃으면 장수하리>의 한 장면이다. 노령화라는 사회적 문제를 코미디 장르로 풀어낸 이 작품은 지역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무대 위로 끌어올리며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이 무대 뒤에는 한 사람이 있다. 37년 동안 같은 극단에서 연극을 이어온 사람. <극단 메들리> 김은민 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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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보다 더 무거운 이름
김은민 대표는 최근 제27회 밀양시 시민대상 문화 부문을 수상했다. 지역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상이다. 하지만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든 감정은 기쁨보다 책임이었다. “처음에는 얼떨떨했습니다. 그런데 곧 부담감이 들더라고요. 앞으로 더 잘하라는 의미로 주는 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에게 이 상은 개인의 성과가 아니다. “제 이름으로 받았지만 혼자 받은 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극단 메들리 식구들이 함께 했기에 받을 수 있는 상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 상을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라고 말한다. 지금까지의 시간이 아니라 앞으로의 시간을 요구하는 상이기 때문이다.
한 극단의 시간을 잇다
김은민 대표와 <극단 메들리>의 인연은 고등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극단 메들리> 산하 고교생극예술연구회 오디션을 통해 처음 연극을 시작했다. “그때는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습니다. 겁이 없었던 거죠.”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어느덧 37년이 되었다. 극단 메들리는 1960년대부터 이어져 온 밀양의 대표 연극단체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지역 연극의 맥을 이어온 극단에서 그는 배우이자 연출가, 그리고 극단을 이끄는 대표로 살아왔다. “선배들이 만들어온 밀양 연극의 뿌리를 이어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그것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에 있습니다.” 긴 시간 동안 극단을 지켜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함께 연극을 하던 동료들이 결혼이나 직장을 이유로 떠나는 일도 있었고, 연극을 둘러싼 경쟁 속에서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단은 계속 이어졌다. 떠난 자리를 또 다른 사람이 채웠고, 무대는 다시 만들어졌다. “그래도 연극을 하길 잘했다고 느끼는 순간은 관객의 박수를 들을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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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인들의 꿈, 밀양 아리나
<극단 메들리>가 활동하는 중심 무대는 밀양 아리나다. 밀양 아리나는 한국 연극계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공간이다. 2000년대 초 ‘밀양연극촌’이라는 이름으로 조성된 이곳은 여러 소극장과 연습 공간, 숙소가 함께 있는 복합 공연단지로 전국 연극인들이 모여드는 창작 거점 역할을 해왔다. 여름마다 열리는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와 다양한 창작 공연이 이어지며 지역 공연예술의 중요한 무대가 되어 왔다. 현재는 ‘밀양 아리나’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며 공연과 축제, 창작 활동이 계속되고 있다. “연극인들의 로망 같은 공간입니다. 운영 주체가 따로 있지만 다른 사람의 공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늘 주인의식을 가지고 내 집처럼 생각합니다.” 그에게 이곳은 무대를 넘어 삶의 일부와도 같은 공간이다.
지역에서 연극을 한다는 것
한국 공연예술의 중심은 여전히 서울이다. 그 구조 속에서 지역 극단이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는 일은 쉽지 않다. 김은민 대표는 그 해답을 ‘사람’에서 찾는다. “단원들의 결속력과 믿음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왜 내가 여기서 연극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당위성을 찾는 것도 필요하죠. 밀양은 이야기가 많은 도시라 문화유산도 많고 독립운동의 역사도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이 작품을 만드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에게 밀양은 단순한 활동 무대가 아니라 창작의 원천이 되는 도시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종종 지역의 삶과 이야기가 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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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으로 사람을 키우다
<극단 메들리>는 오랫동안 청소년과 아동을 위한 무상 연극 교육 프로그램을 이어오고 있다. 김은민 대표는 연극 교육의 의미를 이렇게 말한다. “연극을 한다고 해서 모두 배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연극을 경험한 사람들은 문화예술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집니다.” 연극이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관계다. “연극은 혼자 할 수 없는 작업입니다. 관계 속에서 소통과 이해를 배우는 과정입니다.” 그는 연극이 사회적 역할도 해야 한다고 믿는다. “현대 사회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고 함께 고민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딱딱하게 설명하는 대신 감성으로 사회의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밀양에서 계속되는 이야기
지금 <극단 메들리>가 준비하는 다음 이야기는 분명하다.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밀양의 이야기를 더 많이 알리고 싶습니다.” 또 하나의 목표는 후배 양성이다. “밀양 문화예술을 이야기할 때 극단 메들리를 빼고는 말할 수 없는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37년 동안 그는 수많은 무대를 지나왔다. 하지만 그의 연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관객의 박수가 멈춘 뒤에도, 극장의 불이 꺼진 뒤에도, 밀양 어딘가에서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준비되고 있다. 그리고 그 무대 위에는 여전히 극단 메들리, 그리고 김은민 대표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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