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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83 발행월 : 2026.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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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토크 [메이드 인 경남] 국적은 달라도 리듬은 하나. 이주여성 난타팀 ‘비트윈 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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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83 / 26-08-24 글 김보배 사진 백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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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채가 힘차게 북면을 두드린다. 처음에는 제각각이던 소리가 어느 순간 하나의 리듬으로 맞물린다. 빠르게 몰아치는 장단에 몸짓까지 착착 맞아떨어지면 무대 위 단원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번진다. 우즈베키스탄, 중국, 일본, 베트남 등 서로 다른 곳에서 온 이들이 경남에서 만나 함께 만들어온 소리다. 오랫동안 ‘인타클럽’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해온 이주여성 난타팀은 2024년 12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비트윈 비트(Between Beat)’.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 하나의 리듬을 만들어간다는 뜻을 담았다. 이름은 달라졌지만 함께 북을 두드려온 시간은 그대로다. 한국 생활이 낯설던 때부터 결혼과 육아, 일을 병행하는 지금까지 단원들은 매주 북 앞에 섰다. 그렇게 서로의 박자를 맞춰온 시간이 어느덧 15년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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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보다 먼저 통했던 것이 ‘박자’였다

일본에서 온 하루에 씨가 팀을 만난 것은 2013년이었다. 한국어를 배우던 중 당시 팀에서 활동하던 키르기스스탄 출신 지인의 소개로 난타를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한국어로 마음을 자유롭게 표현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북 앞에서는 긴 말보다 북채를 함께 움직이는 일이 먼저였다. 피아노를 배운 경험은 있었지만 북은 전혀 달랐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손이 따라주지 않아 기초 연습만 반복하다 속상한 날도 있었다. 그렇게 하나씩 익힌 시간이 쌓여 하루에 씨는 이제 팀의 베테랑이 됐다. 새 단원을 가르치고 악보를 만들며, 때로는 새로운 리듬을 짜는 일에도 참여한다.


중국 출신 강향숙 씨가 비트윈 비트를 만난 계기는 조금 달랐다. 가족센터에서 단원들의 공연을 본 뒤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어깨가 좋지 않아 가족은 걱정했지만, 궁금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 연습실을 찾았다. 그렇게 시작한 난타가 벌써 3년째다. 처음에는 박자를 맞추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분명 제대로 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단원들은 박자가 어긋났다고 했다. 정작 어디에서 틀렸는지는 자신도 알 수 없어 답답했다. 박자를 잘게 나눠 이해하고, 다시 치고, 또 틀리면 다시 맞췄다. 그렇게 반복하면서 조금씩 몸이 리듬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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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와 함께 시작된 일상의 변화

난타를 시작한 뒤 달라진 것은 북 치는 솜씨만이 아니었다. 원래 소극적인 편이었다는 하루에 씨는 여러 무대에 서면서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이 한결 자연스러워졌다. 이제 초등학생인 두 아이도 엄마가 무대에서 북을 치는 모습을 자랑스러워한다. 공연 영상을 친구들에게 보여주며 엄마 자랑을 할 정도다. 고향의 가족들 역시 SNS에 올라온 공연 모습을 보며 멀리서 응원을 보낸다. 강향숙 씨도 공연 사진과 영상을 중국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종종 보낸다. 처음에는 난타가 무엇인지조차 잘 모르던 이들도 무대 위 모습을 보고 나면 “정말 대단하다”, “멋지다”며 놀란다. 타국에서 일하고 가족을 돌보면서도 꾸준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이어가는 모습에 건네는 응원이다. 공연장에서 관객에게 받는 박수 역시 오래 남는다. 강향숙 씨는 비가 세차게 오던 날 공연을 마치고 나오던 자신에게 다가와 “너무 잘했다”고 엄지를 치켜 세우던 관객을 잊을 수 없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동안 연습한 보람이 있구나’ 싶었다. 하루에 씨에게는 코로나19 때의 공연이 기억에 남았다. 관객들이 자동차 안에 앉아 공연을 지켜보던 낯선 풍경이었다. 객석 대신 차들이 줄지어 선 공연장의 모습은 지금도 또렷이 남아 있단다.


이런 즐거움이 있기에 연습도 꾸준히 이어진다. 일주일에 두 번, 목요일에는 강습을 받고 토요일에는 단체 연습을 한다. 공연이 잡히면 조금 일찍 나와 부족한 부분을 따로 맞추고, 집에서도 각자 연습해 온다. 누군가 동작 하나를 놓치면 다시 맞춘다. 한 사람이 잘 치는 것보다 모두가 같은 순간에 같은 소리를 내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지난한 반복 끝에 찾아오는 순간이 있다. 북채가 동시에 떨어지고 강한 리듬이 한 치의 어긋남 없이 맞아떨어지는 순간이다. 강향숙 씨는 그때의 기분을 “짜릿함”이라고 표현했다.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은 물론이고, 서로 다른 사람이 만들어낸 소리가 하나가 되는 데서 오는 쾌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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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에서 만난,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람들

오랫동안 함께 북을 치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로의 나라와 문화도 알게 됐다. 처음에는 서로의 문화가 낯설었다. 강향숙 씨는 찬합에 여러 반찬을 담아 오래 두고 먹는 일본의 새해 음식 문화를 접했을 때 너무 신기했고, 일본인 하루에 씨는 다른 나라 단원들이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모습이 새로웠다. 속마음을 조심스럽게 꺼내는 데 익숙했던 그는 “나도 저렇게 표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서로 다른 문화는 이들에게 거리를 만드는 벽이 아니라, 상대를 조금 더 들여다보게 하는 이야깃거리가 됐다. 시간이 흐른 지금은 말보다 먼저 상대의 마음을 읽는 사이가 됐다.  오랜 시간 이어온 팀에도 위기는 있었다. 올해 초, 팀을 지도하던 선생님이 그만두고 출산과 개인 사정 등으로 단원들이 하나둘 자리를 비우면서 실제 연습에 참여할 수 있는 인원이 크게 줄었다. 팀을 계속 유지해야 할지 고민할 만큼 상황이 어려웠다. 선생님도, 충분한 단원도 없었다. 현재 등록된 단원은 8명이지만 실제 꾸준히 활동하는 사람은 6명 정도다. 특히 몇몇 고참 단원만 연습실을 지키던 때에는 ‘이제 그만해야 하나’라는 고민도 했다. 그래도 남은 사람들은 약속한 날이면 연습실에 나왔다. 새로 가르쳐줄 선생님이 없어도 이미 배운 곡을 다시 치며 자리를 지켰다. “쉬면 그냥 없어지는 거니까, 어떻게든 버텨보자.” 그 마음으로 가족센터와 주변에 도움을 청했다. 그러다 새로운 지도자를 만났고, 다시 신곡을 배우기 시작했다. 새 곡으로 무대에 섰을 때 반응도 좋았다. 한 번의 공연이 끝나자 또 다른 무대가 이어졌다. 단원들이 “버텨보자”며 지켜낸 연습실에 다시 북소리가 힘차게 울리기 시작한 것이다. 강향숙 씨는 그 시간을 지나며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움직이면 어려운 상황도 풀어갈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고 했다.


힘든 시기를 함께 건넌 뒤라 앞으로의 꿈도 더 또렷해졌다. 지금은 주로 경남에서 공연하지만 앞으로는 전국 곳곳의 무대에서 비트윈 비트의 북소리를 들려주고 싶다. 언젠가는 단원들의 고향에서도 함께 공연해보고 싶다. 무엇보다 바라는 것은 자신들의 모습을 본 다른 결혼이주여성들이 ‘나도 좋아하는 일을 하나쯤 시작해 봐도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낯선 곳에서 새 생활을 시작하고, 아이를 키우고, 일을 하면서도 좋아하는 일을 오래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을 자신들의 무대로 보여주고 싶다. 


두 사람에게 비트윈 비트가 어떤 존재인지 물었다. 강향숙 씨는 잠시 생각한 뒤 “내 삶과 떨어질 수 없는 또 하나의 사랑”이라고 답했고, 하루에 씨는 “가족의 일부”라고 말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출신 나라도, 쓰는 말도, 살아온 시간도 달랐다. 하지만 매주 같은 연습실에 모여 누군가 박자를 놓치면 함께 다시 맞췄고, 공연을 앞두고는 서로의 동작을 살피며 수없이 합을 맞췄다. 그렇게 15년 넘게 쌓인 것은 난타 실력만이 아니었다. 함께 웃고, 서로를 기다리고, 힘든 시기에 자리를 지켜준 시간도 차곡차곡 쌓였다. 국적도, 나이도, 살아온 시간도 다르지만 북 앞에 서면 이들은 하나의 리듬으로 만난다. 긴 시간, 서로의 박자를 맞춰온 이들의 북소리는 앞으로도 더 넓은 무대를 향해 계속 울려 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