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토크 [이 사람이 사는 법] 칼을 만드는 사람, 시간을 잇는 사람 장도장 임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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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83 / 26-08-21 글 김보배 사진 백동민본문
불에 달군 쇠를 꺼내 망치로 두드린다. 다시 불에 넣고, 다시 두드린다. 단단한 쇠가 얇은 칼날의 형태를 찾아갈 때까지 같은 동작을 수없이 되풀이한다. 칼집과 칼자루를 만들고, 작은 정으로 표면을 한 점 한 점 쪼아 문양을 새긴다. 빠르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임장식 장인은 여전히 오래된 방식을 택한다. 그렇게 아버지가 만들었던 장도를 만들었고, 어느덧 자신도 다음 세대에게 그 방법을 가르치는 사람이 됐다. 진주 장도장전수교육관에서 임장식 장도장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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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칼이 아니라, 우리 곁에 있던 칼
‘장도’ 하면 많은 사람이 은장도를 먼저 떠올린다. 사극 속 여인이 품속에서 꺼내 들던 정절의 상징. 그러나 임장식 장인은 그런 이미지부터 바로잡고 싶어 한다. “그냥 일상생활 용품이었어요. 누구나 지니고 다니면서 쓰던 칼이죠.” 장도는 생각보다 우리 생활 가까이에 있었다. 사과를 깎고, 나물을 다듬고, 손톱과 발톱을 손질하는 데도 썼다. 남녀를 가리지 않았고 신분이 높은 사람만의 물건도 아니었다. 다만 사용하는 재료와 장식에는 차이가 있었다. 서민들은 나무로 만든 목장도를 사용했고, 은이나 금, 옥 등으로 장식한 장도도 있었다. 모양과 특징에 따라서도 여러 종류로 나뉘었다. 임 장인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것은 젓가락이 함께 들어 있는 ‘첨사도’다. 오랫동안 생활 속에 자리했던 장도는 1960년대 공장에서 대량생산한 접는 칼이 등장하면서 빠르게 자리를 내주기 시작했다. 하나를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수제품이 값싸고 편리한 공산품과 경쟁하기는 쉽지 않았다. 어린 시절 필통 속에 넣어 다니며 연필을 깎던 접는 칼을 떠올리면 변화가 조금은 선명해진다. 그 칼이 등장하기 전, 비슷한 자리에 장도가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임 장인이 사람들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것도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다. 장도는 무섭거나 특별한 물건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삶 속에서 사용했던 ‘일상의 칼’이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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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망치 옆에서 시작된 길
임 장인의 기억 속 첫 공방은 지금처럼 번듯한 작업장이 아니다. 1980년대, 벽돌을 쌓고 슬레이트 지붕을 올린 작은 공간이었다. 냉난방 시설도 변변치 않았다. 그곳에서 아버지 故임차출 장인은 쇠를 달구고 칼날을 두드렸다. 임장식 장인이 처음 맡은 일은 ‘바람잡이’였다. 중학생 무렵 아버지가 칼날을 칠 때면 옆에서 풀무를 움직이며 불의 세기를 조절했다.
“아버지는 칼날을 치시고 저는 불 조절을 했죠.” 아버지의 뒤를 이어야겠다는 특별한 결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릴 때부터 공방을 드나들며 아버지의 일을 보았고 자연스럽게 손을 보탰다.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마음속에 정해둔 다른 직업은 없었다. 주변에서는 오래 할수록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이라며 장도를 배워보라고 권했다. 그렇게 다른 직장생활 한 번 없이 아버지 곁에 남았다. 선친 故임차출 장인은 1987년 경상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진주 장도의 초대 기능보유자였다. 임장식 장인은 그에게서 장도를 만드는 전 과정을 배웠다. 아버지가 남긴 수많은 가르침 가운데 지금까지 가장 중요하게 지키는 것은 바로 ‘칼의 생명은 칼날’ 이라는 원칙이다. 아무리 칼집이 화려하고 장식이 아름다워도 제대로 들지 않으면 칼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예리하고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 단조하고 열처리한 뒤 갈고 또 갈아 날을 세우는 이유다. 장식품이 되기 전에 도구여야 한다는 원칙은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이어진 가장 단단한 기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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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만 번 쪼아 완성하는 진주 장도
장도 한 자루를 만드는 일은 느리다. 금속을 두드려 형태를 만들고, 줄로 갈아 표면을 다듬고 광택을 낸다. 강철을 달구고 단조해 칼날을 만들고 열처리와 연마를 거쳐 날을 세운다. 칼집과 칼자루를 만들고 장식을 더하는 과정까지 수많은 손길이 이어진다. 그 가운데 진주 장도를 이야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쪼이질’이다. 작은 정 하나를 대고 두드리며 금속 표면에 그림을 새기는 전통 조각기법이다. 작은 면적에 수천 번, 많게는 수만 번 정을 두드려 문양을 완성한다. 십장생의 사슴과 같은 전통 문양도 그렇게 작은 점과 선이 쌓여 모습을 드러낸다. 더 쉽고 빠른 방법도 있다. 문양을 찍어내면 생산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임 장인은 아버지 때부터 이어온 쪼이질을 놓지 않는다. 전통 방식을 따라야 하는 무형유산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결국 그 방식 자체가 진주 장도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아버지 때부터 이어진 집요한 쪼이질은 다른 지역의 장도와 구별되는 진주 장도만의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재료 하나를 고르는 일도 허투루 하지 않는다. 목장도에는 먹감나무나 대추나무처럼 조직이 치밀하고 쉽게 변형되지 않는 나무를 사용한다. 한 번 장만하면 오래 사용하는 물건인 만큼 시간이 흘러도 갈라지거나 뒤틀려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수많은 공정 가운데 어느 하나 쉬운 일이 없지만, 임 장인에게 그 시간은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이 됐다. 그는 지금도 매일 공방에 나와 두드리고, 갈고,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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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서 아들로, 다시 다음 사람에게
긴 시간 장도를 만들어왔지만 오늘날 장인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일상에서 장도를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사라졌고 직접 실물을 본 사람조차 많지 않다. 전시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작품을 선보이지만, 전통공예가 스스로 살아남기에는 한계가 있다. 임 장인이 지원과 홍보, 무엇보다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그래도 희망은 다시 공방 안에서 자라고 있다. 올해부터 그의 아들이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내려와 장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선친 임차출 장인에게서 임장식 장인으로 이어진 진주 장도의 전통이 이제 아들에게까지 이어지며 3대째 그 맥을 잇게 된 것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하면서도 임 장인은 서두르지 않는다. 자신 역시 오랜 시간 아버지 곁에서 기술을 익혔기 때문이다. 제자들에게도 그가 당부하는 것은 같다. 당장의 돈을 좇기보다 기술을 제대로 익히고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것. “지금 장도 작업을 한다고 돈이 되는 것은 아니에요. 돈을 쫓지 말고 우리 전통을 지킨다는 신념으로 기능을 쌓다 보면 언젠가 빛을 발할 날이 오지 않을까요.”
임 장인은 자신을 대단한 작품을 남기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앞으로 어떤 장인으로 기억되고 싶으냐는 질문에도 답은 담담했다. “저는 이어주는 것밖에 안 돼요. 이어주는 역할.” 아버지에게 받은 것을 온전히 지키고, 자신이 떠난 뒤에도 누군가 계속 만들 수 있도록 다음 사람에게 건네는 것. 그리고 그중 언젠가는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장인이 나오는 것.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전승이다. 한때 사람들의 주머니와 허리춤에서 매일의 삶을 함께했던 장도는 이제 흔히 볼 수 없는 물건이 됐다. 하지만 진주의 한 공방에서는 여전히 불이 피어오르고 망치 소리가 이어진다. 아버지가 두드리던 쇠를 아들이 이어받았고, 이제 그 옆에는 또 다른 아들이 서 있다. 한 자루의 장도가 완성되는 동안 쇠만 단단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세대를 건너온 기술과 시간도 그렇게 다시 한 번 단단하게 벼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