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토크 [이 사람이 사는 법] 경남의 매듭을 잇는 손 - 경상남도 무형유산 매듭장 배순화 보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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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77 / 25-12-08 글 김달님 사진 백동민본문
창원시 교방동 노산민원센터 맞은편. 한자락매듭전수관의 문을 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색’이다. 쪽빛, 연두, 자주, 감색···. 천연염색으로 물들인 명주실 타래와 매듭 작품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한 사람의 자리가 있다. 경상남도 무형유산(옛 무형문화재) 매듭장 배순화 보유자. 그는 오늘도 실타래를 손에 쥐고 말한다. “다시 태어나도 나는 매듭을 할거야. 돈보다 내 손에 잡히는 실 한 꼬다리가 더 좋아.” 60여년의 세월을 실과 한몸처럼 살아온 장인. 그의 삶은 말 그대로 ‘한 자락, 한 자락 엮어 올린’ 시간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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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실 한 올, 장인의 길이 되다
배순화 매듭장의 삶은 어린 시절부터 실과 함께였다. 진해의 작은 마을에서 자란 그는 집안 형편상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대신 열일곱 살에 편물 학원을 다니며 처음으로 ‘손끝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을 배웠다. 여름엔 양재학원에서 옷 짓는 법을 익히고, 겨울엔 편물점에서 하루 종일 실을 만졌다. 스무 살 무렵에는 직접 편물점을 열어 집안의 빚을 갚을 만큼 손재주를 살려 일했다. 그리고 결혼 후, 옮겨간 마산에서 처음 매듭을 손에 익혔다. 매듭으로 생계를 잇고, 사람들을 가르치던 그는 점점 새로운 갈증을 느꼈다. 자신의 운명으로 다가서는 순간이었다.
“나 스스로 부족함도 느껴지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청춘이 만리인데, 전통 매듭을 한번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 무렵부터 그는 실을 다루는 방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생활의 기술에서 전통의 기술로. 박물관과 고궁을 찾아 유물을 직접 관찰하고 남대문·동대문 시장을 돌며 재료를 모았다. 명주실을 천연 염색해 보고, 끓이고 말리고 다시 풀어 엮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매듭장 정봉섭 선생의 딸이자 전승교육사인 박선경 선생을 만나 본격적인 전통 매듭 공부를 시작했다. 함께 시작한 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둘 포기했지만, 끝까지 남아 연구를 이어간 사람은 배순화 매듭장 단 한 명이었다. 그의 노력은 결국 2007년 결실을 맺는다. 밀양 손씨 가문 옛 가마에 부착된 매듭을 완벽하게 재현한 작업이 인정받아 그는 경상남도 무형문화재(현 경상남도 무형유산) 제32호 ‘매듭장’으로 지정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매듭장으로 지정된 이는 단 네 명뿐. 그중 한 사람으로 이름을 올린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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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염색한 명주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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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손으로 짓는 예술, 매듭
매듭은 시간과 손으로 짓는 예술
배순화 매듭장은 매듭을 “시간과 손으로 짓는 예술”이라고 말한다. 실을 고르고, 천연염색으로 색을 들이고, 다회틀에 올려 끈을 짜고, 그 끈을 다시 꼬고 조이며 단단한 형태를 만들어내기까지. 어느 한 과정도 손과 시간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끈 2m를 짜기 어려울 만큼 고된 과정이지만, 그는 이 지난한 공정이 인생과 닮아 있다고 말한다.
“매듭은 인생하고 똑같아요. 너무 세게 조이면 끊어지고, 느슨하면 모양이 안 나지요. 하나라도 어긋나면 제대로 완성할 수가 없어요.”
그가 천연염색을 고집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합성염료를 쓰면 빠르지만, 200년 전 유물을 재현하려면 재료 또한 그 시대의 방식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매듭장으로서 역사유물을 고증하여 재현할 때 가장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그는, 그중에서도 밀양 손씨 가문의 옛 가마 매듭을 재현한 작업을 잊지 못한다. “경남의 유물인데, 내가 안 하면 누가 하겠노”라는 마음으로 치수와 구조를 하나하나 확인하며 매달린 작업이었다. 이 경험은 그가 경상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또 하나의 큰 작업은 국가중요민속문화재인 ‘남은들 상여(남연군 상여)’ 재현 작업이다. 흥선대원군의 부친인 남연군의 상여는 조선 왕실 의례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귀한 유물이다. 배순화 매듭장은 여덟 명의 조력자와 함께 밤낮으로 짜고 엮어 이를 완벽하게 복원했다. 복원된 상여는 현재 충남 예산군 남연군묘 옆 보호각에 전시되어 있다. 그의 독창적인 작업 중 하나인 한글 글자매듭 또한 빼놓을 수 없다. 1980년대부터 10년 넘게 연구해 국화매듭 구조를 변형해 만든 창작매듭으로, 기역(ㄱ), 미음(ㅁ), 시옷(ㅅ)처럼 구조가 다른 글자를 매듭으로 구현해낸 작품이다.
“글자마다 안을 비워야 하고, 어디는 길게 빼야 하고… 머리 싸매고 연구했지요. 그래도 딱 모양 잡히는 순간이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나같은 사람도 매듭을 통해 한글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릴 수 있겠다 싶어서 두근거렸죠.”
이처럼 그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난 매듭들은 전수관 전시실 곳곳을 채우고 있다. 노리개와 허리띠, 상여와 가마의 유소(流蘇), 그리고 한글 자음을 본뜬 글자매듭까지. 전통의 결이 살아 있는 작품들은 이곳 전수관에서 언제든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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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낙지발 매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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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들(남연군상여) 복원 작업에 참여한 배순화 매듭장
전통을 잇는 공간에서 다시 미래를 키우다
배순화 매듭장이 살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은 한자락매듭전수관이 문을 연 날이다. 오랜 세월 시장 한편에서 연구하고 작업하던 그에게 전통매듭을 온전히 펼쳐보일 수 있는 공간을 갖는 일은 평생의 바람이었다. 전수관은 창원시의 지원으로 2019년에 개관했고, 그와 동시에 그의 작업과 연구를 정리한 「매듭과 끈목」도 발간되었다. 그가 걸어온 길과 손끝의 기술, 60여년의 시간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전통을 기록하고 남기는 첫걸음이었다. 이곳에서 그는 지금도 제자들을 기르고 있다. 전수관을 찾는 이들 중에는 오래도록 배움을 이어가는 제자도, 초등학생 때 매듭에 반해 고등학생이 된 제자도 있다. 배순화 매듭장은 그들을 “경남 전통의 명맥을 이어갈 사람들”이라 부른다.
“배우는 사람이 있다는 게 제일 기쁘지요. 내가 가진 걸 남기고 갈 수 있다는 게 고맙고…이 전통이 내 손에서 끊기지 않고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전수관의 하루는 여전히 배순화 매듭장의 손끝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는 오늘도, 가능한 날까지 실을 만질 것이다. 언젠가 자신의 제자들이 경남 전통매듭을 이끌 새로운 이름으로 서길 바라며, 하나의 매듭을 완성하듯 흔들림 없는 마음으로 그 길을 응원하고 있다.
참고
• 경남여성생애구술사 「여성의 삶으로부터 전통을 잇다」 (경상남도여성가족재단 펴냄)
• 「매듭과 끈목」 배순화 펴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