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트렌드 [컬처 탐색] 예술로 숨쉬는 여름 2025년 경남의 무대와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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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71 / 25-06-26 글 정성욱 사진 거창문화재단, 국립진주박물관, 밀양문화재단,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본문
2025년 여름, 경남 곳곳에서는 연극과 무용, 전시와 조형이 각자의 방식으로 감각을 깨운다. 무대는 도시를 구성하고, 전시는 기억을 환기하며, 예술은 일상 가까이로 스며든다. 이번 컬처 탐색에서는 무대와 전시, 축제와 기억이 어우러진 네 가지 장면을 소개한다. 이 계절에만 마주할 수 있는 감정과 장면을 따라, 경남의 예술 현장을 함께 걸어가 보자.
#01. 여름의 무대, 밀양이 다시 깨어난다
2025 밀양공연예술축제
2025.07.27.(금)~08.09.(토) / 밀양아리나 및 밀양연극촌 일원
25회를 맞은 밀양공연예술축제가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2주간 열린다. 2000년대 초 폐교를 활용해 시작된 소규모 공연 교류에서 출발한 이 축제는, 연극과 무용, 음악과 국악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매해 여름 밀양의 흐름을 구성해 왔다. 올해의 슬로건은 ‘고전의 울림, 일상을 두드리다’로, 전통적 서사와 현대의 감각이 만나는 무대를 예고한다. 밀양아리나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주요 공연들은 실험적인 창작극부터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작품까지 다양하게 구성된다.
공연 형식은 연극뿐 아니라 움직임 중심의 퍼포먼스나 음악극 등으로 확장되며, 관객의 접근성을 고려한 기획이 돋보인다. 일부 공연은 기존 무대 공간이 아닌 열린 구조나 이동형 형식으로도 진행될 예정이다. 대학극전과 젊은예술가전은 이번 해에도 이어지며, 창작 워크숍과 연극인 포럼 등도 함께 진행된다. 축제의 고유한 점은 관객이 ‘완성된 공연’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들과 과정을 공유하며 공연예술의 구조 안에 함께 머무를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번 여름, 밀양은 다시 무대의 도시가 된다.
차세대 연출가전
대학극전
#02. 천년의 도시, 진주의 뿌리를 묻다
국립진주박물관 특별전 《천년 진주, 진주목 이야기》
2025.05.20.(화)~08.24.(일) / 국립진주박물관 기획전시실
국립진주박물관은 2025년 여름, 진주의 긴 역사를 다시 들여다보는 특별전을 열고 있다. <천년 진주, 진주목 이야기>는 고려부터 조선, 근대까지 진주목이라는 이름 아래 도시가 겪어온 변화의 흐름을 네 개의 장에 걸쳐 소개한다. 이번 전시는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기획됐다. 전시는 정치와 행정의 구조를 시작으로, 지역 경제와 생활문화, 진주 사람들의 사상과 사회운동, 다양한 신앙과 종교의 모습까지 폭넓게 구성돼 있다. 진주성도, 편액 탁본, 조운 창고 운영 기록, 형평운동 자료 등 유물과 문헌 자료가 함께 전시되며, 일부는 인포그래픽(정보그림)이나 영상으로 시각화되어 설명된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진주를 단순히 ‘역사적인 도시’로만 바라보지 않고, 그 시간 안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생각과 선택에 주목했다는 점이다. 진주의 기질을 상징하는 여러 인물과 사건이 전시의 흐름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조용히 전시장에 머물다 보면, 그 시간이 현재와 멀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국립진주박물관 전경
제2부 전시모습
제4부 전시모습
#03. 자연과 무대가 함께 숨 쉬는 곳
제35회 거창국제연극제
2025.07.25.(금)~08.03.(일) / 수승대 거북극장 및 거창 일대
제35회 거창국제연극제가 7월 25일, 수승대 거북극장에서 막을 올린다. ‘인간, 자연 속에 연, 극적인 세상!’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연극제는 열흘간 공식 초청작, 경연작, 프린지 공연 등 총 76회의 무대를 선보인다. 국내외 57개 극단이 참여하며, 대만·벨기에·불가리아·스페인·호주·프랑스 등 6개국의 초청작도 포함됐다.
이번 연극제에서는 최근 국내 주요 시상식과 비평에서 주목받은 작품들이 다수 무대에 오른다. 극단 코너스톤의 〈요새는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그, 윷놀이〉, 극단 공놀이클럽의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 창작조직 성찬파의 〈반쪼가리 자작〉 등이 대표적이다. 강원도립극단과 충북도립극단도 올해 처음 공식 초청되어, 지역을 기반으로 한 완성도 높은 작품을 선보인다. 해외 초청작 중에서는 대만 더블시어터의 오브제극 〈돌아가는 길〉, 호주의 〈꿀벌의 이야기〉가 준비되어 있으며, 장르적으로는 서커스극이나 가족극 중심의 공연도 마련돼 있다. 개막 공연은 ‘싱포골드’ 우승팀 헤리티지와 청소년 합창단 판타스틱 코러스가 함께하고, 폐막 공연은 민우혁·신영숙·차지연이 출연하는 갈라 콘서트로 마무리된다.
#04. 빛과 불이 깎아낸 시간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기획전 《유리: 빛과 불의 연금술》
2025.05.01.(목)~10.26.(일) /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돔하우스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은 유리를 주제로 한 대규모 기획전을 열고 있다. <유리: 빛과 불의 연금술>은 가야 유물에서 시작해 동시대 유리예술까지를 폭넓게 아우르는 전시로, 유리라는 물질을 단순한 공예의 영역을 넘어 조형과 실험의 관점에서 새롭게 바라본다. 출발점은 김해 대성동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리 목걸이들이다. 청색 유리구슬과 수정, 마노로 구성된 유물은 당시 기술 수준과 국제 교류의 흔적을 함께 보여준다. 전시는 이를 기점으로 현대 유리작가 21인의 작품 200여 점을 통해, 유리가 어떻게 현대 예술로 확장되고 있는지를 다층적으로 구성했다.
블로잉, 캐스팅, 램프 워킹 등 다양한 기법이 적용된 유리 조형물은 큐빅하우스 전시장 전체에 걸쳐 설치되어 있으며, 관람객은 빛과 온도, 공간의 흐름 속에서 유리라는 물질이 품은 시간성을 경험하게 된다. 김해라는 지역성과 예술의 매체가 함께 어우러지는 기획전이다.
기획전 전경
곽동준 - 항해
박성원 - 마스크
이 여름, 예술 속으로 들어가 보자.
올여름 경남에서는 축제와 전시를 통해 예술이 일상 가까이에 다가선다. 밀양에서는 연극을 통해 질문이 던져지고, 진주에서는 기록이 삶의 얼굴을 보여준다. 거창의 무대는 공연예술의 현재를 펼쳐 보이고, 김해에서는 유리라는 매체를 통해 시간의 결이 드러난다. 무대를 구성하는 것은 조명이나 대사만이 아니다. 공연을 준비하는 사람들과 그것을 지켜보는 이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분위기와 구조 속에서 예술은 완성된다. 전시 역시 마찬가지다. 유물을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서 그 안에 담긴 시간과 감정을 읽어내는 일은 관람자의 역할이기도 하다.
이번 7월, 경남의 예술은 형식도 다르고 장소도 다르지만 공통의 지점을 향하고 있다. 그것은 관객에게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보게 하고, 다르게 느끼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열리는 예술의 장면들. 올여름, 그 장면들을 천천히 걸어가며 만나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