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트렌드 [인문학 경남 여행] 경남미식인문학 1탄 - 바다가 차린 식탁, 마산의 미식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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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74 / 25-09-29 글 김봉임 사진 백동민본문
바다는 마산 사람들의 밥상 위에 늘 동석자였다. 항구를 품은 도시의 삶은 파도와 물때에 따라 움직였고, 그 리듬은 곧 식탁의 질서가 되었다. 새벽 어시장의 활기는 하루를 여는 알람이었고, 갓 잡아 올린 생선은 곧 점심과 저녁이 되었다. 바다는 마산을 단순한 해양도시가 아니라 ‘맛의 도시’로 만들었다. 이곳의 음식은 재료를 뛰어넘어 하나의 생활 인문학이다. 가난했던 시절 버려진 아귀를 별미로 승화시킨 창의성, 술보다 안주가 주인공이 되는 통술 문화, 겨울마다 국물 한 그릇에 위안을 얻은 복국, 입안을 터뜨리는 미더덕의 낯선 향까지, 마산의 맛은 언제나 생존과 연대 그리고 전환의 미학을 품어왔다. 바다를 낀 도시만이 지닌 회복력과 개방성이 그 식탁 위에서 여전히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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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경남 술 문화의 세 얼굴 다찌, 통술, 실비
경남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먹는 방식’이 고유명사로 자리 잡은 곳이다. 통영의 다찌, 마산의 통술, 진주의 실비. 음식 자체보다 먹는 법이 이름을 얻은 것은 이 지역이 지닌 독특한 문화적 풍경이다. 세 방식은 공통적으로 제철 해산물을 중심으로 상을 ‘통째로’ 내놓는다. 술값에 따라 안주가 연이어 제공되는 구조는 농경사회 원형 “술은 사고팔되, 음식은 나눈다”의 현대적 변주라 할 수 있다. 다찌(통영)는 일제강점기 일본 선술 문화 ‘다치노미’가 현지화된 것이다. 관광과 결합하며 대형·고단가 상차림으로 발전했다. 통술(마산)은 어시장과 노동자의 도시에서 뿌리내렸다. 푸짐함과 합리성이 특징이며, 회식·접대의 공간으로도 기능했다. 실비(진주)는 이름처럼 ‘실비(實費)’—원가에 가까운 가격으로 운영되는 서민형 술집이다. 주택가에 스며들어 생활과 밀착된 특징을 가졌다. 세 형제는 뿌리는 같되, 지역의 성격에 맞게 다른 빛깔로 성장했다.
마산 통술, 바다가 주방장이 되는 방식
마산 통술은 어시장의 물길을 식탁으로 옮겨놓은 문화다. 그날 들어온 해산물이 메뉴가 되고, 풍랑과 계절이 곧 레시피가 된다. 문어숙회, 해삼, 멍게, 구운 생선, 도다리쑥국이 차례로 올라오는 상차림은 늘 넘치도록 푸짐하다. 통술의 본질은 두 가지다. 첫째, 공유의 미학이다. 큰 상에 놓인 안주를 모두가 함께 집어 먹으며 술잔이 돌고 이야기가 돈다. 둘째, 가변성이다. 메뉴판이 아닌 바다가 주방장 역할을 한다. “오늘은 멍게가 좋습니다”라는 말이 최고의 안내문이다. 이 푸짐한 상차림은 노동자에게는 하루의 위로였고, 외지 손님에게는 마산의 환대를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다. 통술은 단순한 술자리가 아니라, 노동과 바다 그리고 접대가 어울린 한 도시의 사회학이었다.
바다가 준 문화, 어떻게 지킬 것인가?
요즘 통술거리에 사람이 없다. 80년 가까이 명맥을 이어온 마산 통술이 지금 사라질 위기에 있다. 통영 다찌, 진주 실비와 함께 경남 3대 술 문화로 꼽히지만, 관광지화된 통영의 다찌나 생활 밀착형 진주의 실비와 달리, 마산 통술은 도시 쇠퇴와 함께 흔적을 잃고 있다. 통술이 남긴 유산은 분명하다. 노동과 바다의 리듬이 한 상에 녹아 있던 방식, 술보다 안주가 주인공이었던 독특한 술 문화 그리고 그것을 매개로 이어진 관계와 연대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히 ‘맛집 부활’이 아니다. 통술 문화가 담고 있는 맛의 인문학을 오늘에 맞게 되살려 내야 한다. 미니 상차림, 선택형 안주, 청년 창업과의 결합 같은 시도는 통술의 DNA를 현대적으로 계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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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마산의 기질을 담은 아귀찜, 복국, 미더덕
마산의 음식에는 늘 도시의 성격이 담겨 있다. 아귀찜(아구찜)은 못난 생선을 별미로 승화시킨 창의성과 화끈한 기질을 보여준다. 1970~80년대 전국화된 이후 지금도 오동동 골목은 콩나물 수증기로 가득하다. 복국은 금지의 경계를 넘어선 국물이다. 술꾼의 해장이자 노동자의 위로로, ‘헐값 생선’을 보양식으로 바꾼 회복의 서사다. 미더덕은 경계에서 터지는 풍미다. 진동만의 내해에서만 자라는 이 해산물은, 늘 바다와 육지, 전통과 현대 사이를 살아온 마산의 은유다.
아귀찜, 버려진 것이 별미가 되다
아귀는 본래 ‘못난 생선’으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마산에서는 버려지던 아귀를 덕장에서 말려 건아귀로 만들고, 된장 물에 삶은 뒤 콩나물·미나리를 곁들여 매운 양념으로 무쳐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오늘날의 마산 아귀찜이다. 1970년대 신문 맛칼럼에 처음 등장한 뒤, 1980년대 전국체전과 대규모 문화 행사를 계기로 전국화에 성공했다. ‘마산 아구찜 거리’가 조성된 것도 이 무렵이다. 아귀찜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버려진 것을 가치로 바꿔내는 서민의 지혜, 불의에 맞서는 화끈한 기질, 동치미 국물 하나로 상을 완성하는 절제의 미학이 모두 담겨 있다. 그래서 아귀찜은 마산 사람의 기질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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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국, 경계를 넘어선 국물
복어는 조선시대에 금지령이 내려졌던 위험한 생선이었다. 그러나 마산 사람들은 그 위험을 관리하는 기술과 규율을 축적하며 복어를 맑고 뜨거운 위로의 국물로 만들었다. 복국은 술꾼에게는 최고의 해장이자, 노동자에게는 속을 달래주는 회복식이었다. 어시장 주변에 복국집이 밀집한 것은 단순한 입지 조건이 아니라, 신선도와 숙련이 곧 안전이라는 원칙 때문이다. ‘헐값 생선’이 보양식으로 승화된 서사는, 아귀찜의 이야기와 평행을 이룬다.
미더덕, 경계의 풍미
마산 진동만은 미더덕이 자라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섬들이 파도를 막고,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형은 플랑크톤이 풍부한 내해를 만든다. 미더덕은 바로 그 경계에서 자라는 바다의 보석이다. 한입 깨물면 터져 나오는 향은 호불호를 가르지만, 그 낯섦과 강렬함은 한 번 익숙해지면 중독성을 띤다. 이는 곧 마산이라는 도시의 은유다. 바다와 육지, 전통과 현대, 노동과 예술의 경계 위를 살아온 도시의 기질이 미더덕 한 알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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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으로 읽는 마산의 인문학
통술 문화, 아귀찜, 복국, 미더덕이라는 음식은 단순한 별미가 아니라 삶의 인문학이다. 마산의 맛은 늘 바다와 함께였고, 노동과 함께였으며, 웃음과 함께였다. 오늘날 ‘맛집’이 소비의 대상이 되었다면, 마산의 맛은 여전히 역사와 기억, 사람을 잇는 살아 있는 문화다. 숟가락을 드는 순간, 우리는 단순히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마산이라는 도시의 역사와 사람들의 마음을 함께 삼키는 것이다.
참고 경남도민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