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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77 발행월 : 202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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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토크 [세계 속 경남] 전통의 흥, 세계를 잇다 - 밀양백중놀이 보존회 추현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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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77 / 25-12-08 글 김보배 사진 백동민 밀양백중놀이보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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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 들녘에서 호미를 씻던 여름 풍속이, 세계의 거리와 무대에서 울려 퍼졌다. 농부의 쉼과 공동체의 흥으로 태어난 밀양백중놀이는 최근 일본 교토와 APEC 경주 무대에서 전통의 신명을 당당히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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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백중놀이의 주역들 

밀양 내일동의 골목 끝, 오래된 목간판이 걸린 작은 문이 열린다. 안으로 들어서자 북과 징, 지게목발로 만든 작두말이 벽을 채우고, 방 한편에는 오래 쓰인 꽹과리와 나발이 가지런히 놓였다. 이곳에 국가무형유산 밀양백중놀이를 이끌어온 세 사람이 모였다. 밀양백중놀이보존회장 추현태, 44년 경력의 나발·농요 명인 이용만, 북 전승교육사 최선희 씨가 그 주인공들이다.  



일본 교토에서 울린 우리 전통의 소리

지난 10월, 밀양백중놀이 공연단 35명은 교토 국제교류회관 앞거리를 힘차게 걸었다. 작두말이 선두에 서고, 깃발이 휘날리고, 사물놀이 장단이 일본 가을 하늘을 흔들었다. 

“작년에 소규모로 갔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올해는 정식 초청을 받았죠. 돈도 많이 썼습니다. 그래도 꼭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가지 않으면, 누가 이 소리를 보여주겠습니까?”(추현태 밀양백중놀이보존회장) 


북을 잡은 최선희 전수자의 기억은 더욱 생생하다. “북채를 들고 장단을 치는데 마음속으로 ‘이 대지를 울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도 모르게 힘이 실리더라고요.” 

공연 뒤 한 장면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한 할머니가 다가와 북을 쥔 손을 붙잡더니,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고향에서 듣던 소리 같다고…. 손을 잡고 한참을 우셨어요.” (최선희 밀양백중놀이 전승교육사) 그날 교토 한복판에서 터진 흥은 뿌리와 기억, 그리움이 만나는 자리였다. 교토의 거리에 퍼진 장단 뒤에는 조용히 뿌리를 지켜온 시간과 이를 응원한 손길들이 있었다. 밀양문화관광재단과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의 2025 시·도 문화예술 기획지원은 그 도약에 힘을 더했다.



APEC 경주에서의 조용한 환호

“관객이 거의 없었죠. 그래도 우리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추현태 회장은 씩 웃었다. 세계 정상들이 오간 APEC 경주 무대. 관람 제한으로 일반 시민들은 들어올 수 없었다. 단 몇 명의 외국인을 앞에 두고도, 연희는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펼쳐졌다. “K-pop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만 우리 전통의 흥을 잘 모르잖아요. 그들에게 보여줘야죠. K-pop의 뿌리는 이 신명이라고.” 공연단의 소리꾼 이용만 선생은 덧붙인다. “소리는요, 사람 가슴을 울리려고 하는 겁니다. 사람이 있든 없든, 나는 똑같이 합니다.” 44년간 농요와 나발을 불며 밀양 들판과 무대를 누벼온 세월이 만든 울림 때문일까. 87세의 나이에도 그의 목소리는 힘이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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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추현태 밀양백중놀이보존회장, 나발·농요 명인 이용만, 북 전승교육사 최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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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일본에서 열린 백중놀이 공연단의 행진 






‘호미 씻는 날’에서 세계의 장으로

밀양백중놀이는 원래 ‘호미씻이’에서 비롯됐다. 1년 농사 중 가장 고된 김매기를 끝낸 후 노동의 흙과 땀을 씻어내는 날, 농민들은 호미를 깨끗이 씻어 걸어두고 노래하고 춤추며 마을을 돌았다. “백중놀이는 그냥 노는 자리가 아닙니다. 땅과 사람, 계절과 수확을 잇는 의례예요. 농부의 휴식이자 공동체의 축제였죠.” (추현태 밀양백중놀이보존회장) 밀양백중놀이가 국가무형유산이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삶의 의례 위에 양반춤·범부춤 등 예술이 결합된 독특한 지역 형식. 농경·풍자·신명·예술이 한 판 속에 들었다. 



이 길 잇는 젊은이에겐, 우린 미래를 내주는 셈이죠

그러나 화려한 해외 무대 뒤에는 전승에 대한 고민이 겹겹이 놓여 있다. “지금 단원 중 막내가 40대입니다. 20~30대가 오기 쉽지 않아요.” 추현태 밀양백중놀이보존회장 이유를 묻자, 그는 담담히 말했다. “과거(농경사회)엔 백중놀이가 삶의 일부였지만 지금은 ‘이벤트’처럼 보이죠. 직장·육아·생계 모든 걸 같이 하면서··· 이 길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면 포기할 수도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절대요. 그래서 ‘투 트랙 전략’이 필요한 겁니다. 전통은 우리가 지키고, 젊은 세대는 이것으로 새로운 길을 만들 수 있어야 해요. 뮤지컬도 좋고, 콘텐츠도 좋고, 굿즈도 만들면 됩니다. 백중놀이로 먹고살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해요.” 전통을 ‘그대로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전통을 기반으로 새로운 생태계를 만드는 일. 그가 말한 미래는, 전승의 가장 현실적인 비전이다.


c0c4d935d5a043fb69fd52e23c781a21_1765190352_3566.jpg2025 APEC KOREA 크로스 컬처 페스티벌의 초청공연으로 선보인 밀양백중놀이(경주시 예술의전당) 



마을 축제에서 다시 피는 공동체의 힘

보존회는 최근 백중마을축제도 시작했다. 공연 위주의 행사에서 벗어나 마을과 공동체가 함께 참여하는 전통 축제의 원형을 되살리기 위해서다. “처음엔 힘들었지만, 우리가 왜 이걸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됐죠.” (최선희 밀양백중놀이 전승교육사) 단원들은 전통 장단과 몸짓을 이어가기 위해 지금도 꾸준히 연습하고, 젊은 제자들을 맞이할 준비도 하고 있다. 화려한 무대보다 중요한 건, 오랜 시간 이어온 손의 기억과 몸의 기억, 그리고 “누군가에게 이 자리를 물려주겠다”는 마음이다.


“백중놀이는 흥이고, 해방이고, 기도입니다. 우리가 가진 가장 오래된 예술입니다. 이 소리가 세계 어디에서든 계속 울려 퍼지길 바랍니다.” (추현태 밀양백중놀이보존회장) 세 사람은 다시 악기 앞에 섰다. 나발 끝에 입술을 붙이는 순간, 좁은 공간이 다시 들판이 되고, 여름이 되고, 마을이 된다. 그리고 그 장단은 곧 또 다른 하늘 아래로 향할 것이다. 전통은 오래된 것이 아니라, 오늘을 지나 내일로 건너가는 길이다. 흙에서 시작된 흥은, 오늘도 새로운 길을 걸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