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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70 발행월 : 2025.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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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토크 [이 사람이 사는 법] 소극장 불빛 아래서, 극단 미소 고대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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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70 / 25-05-26 글 임승주 사진 백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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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연극의 맥을 잇는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관객 감소 등 연극 시장 전반의 침체, 지원 사업을 둘러싼 경쟁 등 수많은 현실적 문제를 돌파하면서도  연기와 연극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서는 열정을 넘어선 용기가 필요하다. 기획자로 시작해 배우로, 그리고 지금은 극단의 대표로 36년째 연극 무대를 지키고 있는 극단 미소 고대호 대표는 그래서 용감한 사람이다. 그를 창원 명서동에 위치한 극단 미소 소극장 불빛 아래에서 만났다.  



기획자로 시작해 연극배우로

극단 미소는 1989년, 지금의 고대호 대표와 동료 연극인 천영훈, 장은호, 김영일 네 사람이 의기투합해 만들었다. 처음에는 기획자로 연극에 발을 디딘 고대호 대표는 36년의 세월을 지나며 배우도 되고, 지금은 5년째 극단 미소의 대표도 맡고 있다.  


“처음부터 배우는 아니었어요. 저는 원래 기획자였죠. 창단 이듬해 <카덴자>라는 작품을 준비하면서 배우 한 명이 부족해 임시로 무대에 오른 게 배우로서 첫 시작이었어요. 그때는 대사도 몇 줄 없고, 덩치에 맞지도 않는 망나니 역할이었죠. 분장용 수염도 비싼 시절이라, 남의 수염을 광대처럼 길게 붙이고 무대에 올랐던 게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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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돈과호태>의 한장면


 



경남연극제 단체 대상 안겨준 <대찬 이발소> 

그는 전문적으로 연기를 배우지 않았다. 선배들의 연기를 눈으로 익히고, 어깨 너머로 배우며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성장했다. 지금까지 출연한 연극은 50여 편.  첫 무대의 기억을 안겨준 <카덴자> 외에 그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작품은 단연 <돈과 호태> 그리고 <대찬 이발소>를 꼽을 수 있다. 


<돈과 호태>에서 고 대표는 아버지 역인 ‘호태’를 연기했고, 이 작품으로 2021년 제39회 경남연극제 연기대상 수상이라는 배우 인생 최고의 선물을 받았다. 그리고 올해 제43회 경남연극제에서는 <대찬 이발소>가 기쁨을 안겼다. 연출상(장종도 연출), 연기 대상(‘대찬’ 역의 천영훈 배우), 우수 연기상(‘젊은 옥련’ 역의 박시우 배우) 등 개인상에 이어 단체 대상까지. 경남의 14개 극단이 참여한 대회에서 최고상을 손에 쥔 것이다. 


“<대찬 이발소>는 저에게도 특별한 작품이에요. 7년 전 <대찬 이발소> 공연을 준비했는데, 그때 제가 전정기관에 문제가 생겨서 병원에 입원한 직후 무대에 올랐던 해거든요. 와… 30년 연극하면서 대사를 놓친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제가 대사를 잊은 지도 몰랐으니까요. 이번 수상으로 그때의 아픈 기억이 싹 나았어요.” 


<대찬 이발소>는 이발소를 배경으로 한 가족 이야기다. 딸을 잃은 부모, 오랜 세월 ‘미안하다’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한 아버지, 세대 갈등을 겪는 자식들까지.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 문화와 가족의 단절을 섬세하게 풀어냈다.  고 대표가 맡은 역할은 이발소 단골손님으로, 주인공인 이발사와 호흡하는 장면이 많다. 이발사이자 아버지 ‘대찬’ 역을 맡은 천영훈 배우는 고대호 대표와는 40년 지기. 극단 창단부터 지금까지 함께 같은 길을 걸어온 만큼 서로 눈빛만 봐도 아는 사이다. 고 대표는 인터뷰 내내 천영훈 배우의 근황을 전하며 때로는 동료 배우로, 때로는 형 동생 사이로 한 길을 걸어온 이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아낌없이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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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돈과호태>의 한장면 




소극장, 그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현재 고 대표는 경북 상주에 거주하며 농사와 연극을 병행하고 있다. 농사일이 없는 겨울엔 창원으로 내려와 한 달 가까이 연습하며 무대에 오른다. 아직은 체력도 되고, 대사도 외울 수 있다며 여전히 연기를 하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그의 바람대로, 극단 미소는 올 여름 더욱 부지런히 달릴 예정이다. 경남연극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만큼 오는 7월 인천에서 열리는 제43회 대한민국연극제에 경남 대표로 참가해야 한다. 또 경상남도와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이 지원하는 ‘2025 경남 공연장 상주단체 육성 지원 사업’에 선정돼 고 대표와 단원들은 하동문화예술회관을 오가며 공연과 주민 대상 프로그램도 이어오고 있다. 기획자로 시작해 배우로, 그리고 극단 대표로 다양한 역할을 해오면서 연극 시장의 변화를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는 고대로 대표. 지금은 연출과 실무를 젊은 단원들에게 맡겨두고 있지만, 극단 운영의 무게는 여전히 그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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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연극제에서 대상을 수상 



“요즘 젊은 친구들이 잘 해줘요. 예전엔 포스터도 직접 붙이고, 조명도 우리가 다 했지만, 지금은 전공자들이 와서 각 분야를 맡아주니까 훨씬 좋아졌죠.” 


고대호 대표의 가장 큰 고민은 ‘연극의 내일’이다. 구체적으로는 인력 부족, 그리고  더 이상 연극을 찾지 않는 사람들이 가장 큰 고민이다. 


“연극하고 싶어 하는 젊은 사람이 너무 없어요. 한때는 수도권에 배우가 몰려 문제였지만, 지금은 수도권의 극단에도 배우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예요. 지방은 더 심각하죠. 결국 문제는 예술이 아니라 구조입니다. 경남만 해도 단체는 늘고 지원 예산은 줄고… 현실은 녹록지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직 무대를 포기할 수 없다. 관객 앞에 서서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숨 쉬는 시간, 그러한 연극의 본질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끝으로 그는 관객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2만 원짜리 소극장 티켓, 예전 같으면 하루 일당에도 못 미치던 가격이에요. 그런데도 요즘엔 비싸다고들 하죠. 하지만 연극은 단지 관람이 아니라 경험입니다. 공연 한 편 보러 오시면, 그 값을 충분히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