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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77 발행월 : 202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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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트렌드 [인문학 경남 여행] 경남미식인문학 2탄 - 남강이 빚은 맛 경남 컬처, 진주의 미식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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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75 / 25-10-31 글 정성욱 사진 진주시청 공보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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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는 예로부터 사람과 문화, 그리고 음식이 어우러진 도시였다. 남강을 품은 고장은 물길을 따라 풍요로움을 쌓았고, 교방과 시장, 골목마다 세월이 배어 있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음식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삶을 이어왔다. 그래서 진주의 맛은 한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자, 사람들의 삶이 녹아든 기록이다. 지금부터, 남강의 물길을 따라 이어진 진주의 맛과 그 속에 깃든 삶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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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정이 깃든 술상, 진주의 실비 

‘실비(實費)’는 말 그대로 ‘실제 비용’만 받던 술집에서 유래했다. 처음에는 술값만 받고 안주는 덤으로 내주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술값에 약간의 안주 값을 더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오늘날에는 1인당 일정 금액을 내면 그 날의 제철 안주가 순서대로 나오는, 소박하면서도 정겨운 상차림으로 자리 잡았다. 진주의 실비는 1970~80년대 중앙로와 신안동 일대의 주택가 골목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해진 메뉴는 없고, 주인이 그날 시장에서 구해온 재료로 상을 차리는 것이 특징이다. 술을 주문하면 안주가 함께 오르고, 잔이 비워질 때마다 새로운 안주가 이어진다. 소박하지만 인심이 마르지 않는 술상은, 오랜 세월 사람들의 고단함을 보듬어주었다. 마산의 통술이 항구의 풍요를, 통영의 다찌가 관광의 흥을 담았다면, 진주의 실비는 ‘사람 사는 정’을 품었다. ‘실비’라는 이름에는 단순히 값이 싸다는 뜻을 넘어, 함께 먹고 나누는 삶의 철학이 깃들어 있다. 그래서 지금도 진주의 실비집에 앉으면, 그날의 안주보다 먼저 따뜻한 정이 한 상 차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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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의 미학, 진주비빔밥 

진주비빔밥은 경남을 대표하는 전통음식이자 ‘진주 4미’ 중 하나로 꼽힌다. 사골국물로 지은 밥 위에 숙주나물, 고사리, 무나물, 돌김, 청포묵 등을 가지런히 올리고, 그 위에 소고기 육회와 비빔장을 얹는다. 선짓국을 곁들이면 비로소 한 상이 완성된다. 진주비빔밥의 기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진다. 하나는 임진왜란 때 진주성 전투 중, 여성들이 병사들에게 밥과 반찬을 한데 섞어 나른 데서 비롯되었다는 전투설이다. 또 하나는 제사 후 음복 음식을 함께 비벼 나눠 먹던 풍습에서 비롯되었다는 제사음식설이다. 두 이야기는 모두 진주 사람들의 공동체적 삶을 반영한다. 진주비빔밥은 ‘칠보화반(七寶花盤)’이라 불릴 만큼 화려하다. 여러 재료의 색과 질감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그릇 하나가 한 폭의 그림 같다. 전주의 콩나물 대신 숙주나물을, 계란 대신 육회를 올리는 것이 특징이다. 밥은 사골국물로 지어 감칠맛이 깊고, 비빔장은 물엿을 섞은 엿꼬장을 쓴다. 그 맛은 단순한 혼합이 아니라, 질서 있는 조화에서 온다. 진주비빔밥은 색과 맛, 온기와 냉기의 균형 속에서 ‘조화의 미학’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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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강의 맑은 물처럼 깔끔한 맛, 진주냉면 

진주냉면은 조선 시대부터 한강 이남을 대표해온 냉면이다. 해산물로 우려낸 장국에 쇠고기 육수를 더하고, 메밀가루에 고구마 전분을 섞어 만든 면을 말아낸다. 차가운 국물 한 그릇 안에 산과 강, 바다의 풍요가 함께 스며 있는 진주의 향토음식이다. 진주에서 냉면이 발달한 것은 지리와 역사적 배경 덕분이다. 남강을 중심으로 한 진주는 경상우병영과 도청이 있던 행정 중심지였고, 산청·의령·함안 일대의 메밀 재배지와도 가까웠다. 해산물이 풍부한 지리적 조건이 냉면 문화의 토대가 되었다. 진주냉면의 가장 큰 특징은 육수다. 해물의 깊은 향이 배인 장국에 사골과 소고기 육수를 섞어 내기 때문에 맛이 맑고도 진하다. 그 위에 배와 오이, 석이버섯, 전복, 소고기 육전, 계란지단이 고명으로 올라간다. 평양냉면이 담백한 동치미 국물의 선을 그린다면, 진주냉면은 바다의 감칠맛과 육향의 조화로 깊이를 완성한다. 한여름 남강의 물빛처럼 투명한 그 맛은 단순한 시원함을 넘어, 진주가 지닌 기질을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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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상에서 태어난 삶의 밥상, 진주 헛제삿밥 

유교 문화가 깊이 뿌리내린 진주에서는 제례가 일상의 일부였다. 남명 조식의 학맥을 이은 유학자들과 여러 성씨의 집성촌이 모여 있던 탓에 제사는 한 해에도 여러 차례 치러졌다. 제사음식을 정성껏 차리고 이를 가족과 이웃이 함께 나누는 풍습이 헛제삿밥의 문화적 바탕이 되었다. 밥상에는 ‘3적(육적·어적·두부적)’, ‘3탕(명태·건홍합·피문어)’, ‘3채(숙주·고사리·시금치)’가 오르고, 육전과 조기, 김치, 국이 곁들여진다. 유래에는 여러 이야기가 전한다. 유생들이 밤늦게 공부하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하인에게 제사음식을 차리게 했다는 설, 그리고 진주에 부임한 원님이 제사음식의 맛을 잊지 못해 향과 초를 피워 ‘헛제사’를 지냈다는 설이 대표적이다. 시간이 흐르며 헛제삿밥은 제례의 의미를 넘어 진주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안동과 대구에도 비슷한 음식이 있지만, 진주의 헛제삿밥은 제수 음식을 원형에 가깝게 재현한 상차림으로 독보적이다. 오늘날에는 한 상 차림의 정성과 유교적 미학이 깃든 향토음식으로 계승되어, ‘진주 4미’로 불린다. 헛제삿밥은 조상을 향한 예가 생활의 지혜로 변한 음식이자, 나눔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진주의 인문학이다.



참고자료 경남도민일보 지역N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