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트렌드 [인문학 경남 여행] 경남미식인문학 4탄 - 삶에 담겨 이어져 온 맛, 의령의 미식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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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77 / 25-12-08 글 정성욱 사진 백동민본문
의령의 맛을 들여다보면 그 지역의 역사와 생활이 함께 보인다. 사람들의 이동이 많았던 해방기, 산과 들에서 얻은 재료를 생활 속 지혜로 조리하던 시절, 그리고 우시장으로 북적이던 장날의 풍경까지. 의령의 생활사와 시간의 결이 담긴 네 가지 음식을 통해, 의령이라는 지역이 어떻게 자신만의 맛을 빚어왔는지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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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맛으로 빚어낸, 의령소바
해방 이후, 일본에서 생활하던 이들이 외지에서 익힌 조리법과 식문화를 들여오며 낯설면서도 새로운 음식이 지역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부림면 신반마을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도 그 중 하나다. 일본에서 메밀국수 만드는 법을 배워온 한 여성이 귀향 후 이웃들에게 국수를 만들어 나누었다는 기록은, 의령소바의 출발점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다. 당시 사람들에게 메밀국수는 특이하면서도 생소한 맛이었다. 그러나 그 조리법이 지역에 머물면서 의령은 이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조금씩 바꿔 나갔다. 일본식 소바가 가진 맛이 옅어지고, 대신 지역의 입맛에 맞는 육수와 메밀면 조리법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렇게 변형된 방식은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의령소바’라는 이름 아래 하나의 음식으로 정착했다. 지금의 의령소바는 이름만 일본식일 뿐, 실체는 완전히 지역화된 음식이다. 해방기의 귀향이라는 시대적 배경에서 시작해, 공동체의 입맛 속에서 다시 빚어진 음식. 이러한 역사적·문화적 맥락을 살펴보면, 의령소바는 단순한 메밀국수를 넘어 지역의 시간이 축적된 한 그릇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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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이 더한 향과 문화, 망개떡
의령에서 망개떡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떡을 감싸는 특유의 잎이다. 청미래덩굴, 지역에서는 ‘망개나무’라 불리는 이 덩굴식물의 잎은 은은한 향을 품고 있어 떡을 쪄낼 때 자연스러운 향을 입힌다. 팥소를 넣은 떡을 이 잎으로 감싸 찌는 방식이 지금의 망개떡을 규정하며, 이러한 조리법은 의령을 대표하는 향토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의령에 전해지는 설화는 이 떡의 의미를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첫 번째 이야기는 이바지 음식에서 비롯된다. 옛날, 백제의 한 귀족이 사냥 중 의령 땅에서 길을 잃어 쓰러졌고, 이곳 심마니의 딸이 정성을 다해 간호했다. 회복한 귀족은 백제로 돌아가 청혼을 보냈고, 혼례를 올리며 망개떡이 이바지 음식으로 전해졌다는 이야기다. 두 번째 이야기는 의병의 전투식량과 관련된다. 임진왜란 당시 의령 출신의 곽재우 장군이 의병을 이끌며 유격전을 펼칠 때, 청미래덩굴 잎에 싼 밥은 의병들에게 훌륭한 이동식 식량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두 이야기는 전설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망개떡이 단순한 간식을 넘어 의령 사람들의 삶·자연·역사와 맞닿아 있는 음식임을 잘 보여준다. 의령에서 망개떡이 특별한 이유는 결국 이 음식이 지역의 시간과 정서를 담아내는 하나의 문화라는 사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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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가 남긴 따뜻한 한 그릇, 소고기국밥
의령의 소고기국밥이 자리 잡은 배경을 이해하려면 먼저 의령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선시대 기록에 따르면 의령읍성 안팎에서는 매월 4일과 9일에 장이 열렸고, 성 안의 장은 생활용품과 곡물을 거래하는 안장이었으며, 성 밖의 장은 소를 사고파는 우시장으로 기능했다. 의령은 예부터 소싸움으로도 유명한 지역이었기에, 장날마다 전국의 장꾼이 의령 우시장으로 몰려들었다고 전해진다. 장터의 성격은 자연스럽게 음식 문화를 만들었다. 많은 사람이 오가는 우시장 주변에서는 빠르게 먹을 수 있으면서도 뜨끈하게 속을 채워주는 음식이 필요했다. 그 결과 소고기를 다루는 일이 잦았던 우시장의 환경 속에서, 소뼈와 살을 활용해 국물을 내고 콩나물·무·파를 더해 끓여내는 국밥이 점차 지역의 일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즉, 의령 소고기국밥은 우시장이 남긴 생활의 흔적이며, 지역의 시간과 노동이 국물 속에 응축된 한 그릇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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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지혜에서 탄생한, 가례불고기
의령의 가례불고기는 지역의 생활 방식에서 출발한 음식이다. 냉장 시설이 없던 시절, 돼지고기는 금방 상하기 쉬운 재료였다. 그래서 의령 가례마을에서는 돼지고기를 소금으로 간해 숯불에 한 번 굽고 기름을 빼 보관하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이렇게 초벌구이를 거친 고기는 필요할 때 양념을 더해 다시 구워 먹었고, 이 생활적 필요가 오늘날 가례불고기의 조리법으로 이어졌다. 이후 먹을 때가 되면 미리 구워둔 돼지고기를 양념장에 버무린 뒤 다시 불 위에 올려 완성했다. 한 번 익힌 고기를 다시 굽기 때문에 양념이 표면에 더 빠르게 스며들고, 두 번의 불맛이 겹치면서 가례불고기만의 진한 향과 맛이 만들어진다. 오늘날 가례불고기는 의령을 대표하는 향토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마을 주민들의 저장 습관에서 비롯된 조리법이 한 지역의 특색 있는 음식으로 발전한 사례이며, 화려한 조리 기술 없이도 삶의 방식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음식이라는 점에서, 가례불고기는 의령의 생활사에 닿아 있는 중요한 맛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참고 경남일보·지역N문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