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트렌드 [취향의 발견] 경남의 맛을 천천히 굽다 - 한 조각 안에 담긴, 그곳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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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70 / 25-05-27 글 정성욱 사진 카페유자 삼남매제빵소 지리산황금나무본문
우리가 좋아하는 디저트는 단순히 달콤해서가 아니다. 그 안에는 어디에서 자랐는지,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경남 곳곳에서도 이런 디저트들을 만날 수 있다. 햇살 좋은 남해에서 난 유자로 굽고, 가을밤이 익힌 합천의 밤을 넣고, 함양의 곶감으로 만든 빵. 재료 하나하나에 지역의 풍경과 손길이 배어 있는 디저트들이다. 이번 5월, 취향의 발견에서는 남해, 합천, 함양에서 만난 세 가지 디저트를 소개한다.
남해 ‘카페유자’
유자카스텔라 유자 향기 따라 남해를 걷다
통영을 지나 남해 바닷길을 따라가면, 유자 향이 먼저 반기는 마을이 있다. 남해군 이동면은 국내 유자 생산의 대표 지역. 겨울 햇살을 머금고 자란 이곳의 유자는 껍질이 얇고 향이 진하며, 산뜻한 신맛과 은은한 단맛이 조화를 이룬다. ‘카페유자’는 바로 이 유자의 특성을 고스란히 살려낸 디저트를 선보인다. 대표 메뉴인 유자카스텔라는 남해 유자의 풍미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부드럽고 촉촉한 반죽 사이로 퍼지는 상큼한 향이 이 디저트의 매력이다. 과하게 달지 않고, 유자 본연의 은은한 단맛과 향긋함이 어우러져 한 조각만으로도 남해 바다를 닮은 상큼함이 스며든다. 남쪽 바닷마을 언덕에 자리한 이 카페는, 유자 향처럼 맑고 차분한 분위기를 품고 있다. 초겨울이면 유자청의 깊은 단맛이, 봄에는 막 짜낸 유자즙의 상큼한 향이 더 살아난다. 남해의 자연과 계절 그리고 정성이 고스란히 녹아든 한 조각. 유자카스텔라를 맛보는 순간, 향긋한 남해의 풍경이 입안에 피어난다.



합천 ‘삼남매제빵소’ 밤파이
산이 내어준 맛, 합천의 밤
합천의 가을은 밤이 익어가는 시간이다. 황매산을 등지고 펼쳐진 산자락에서는 예로부터 밤나무가 많이 자라, ‘합천 밤’은 알이 크고 단단하기로 유명하다. 삼남매제빵소는 밤을 직접 손질해 속이 꽉 찬 밤파이를 만든다.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단연 ‘삼남매 밤파이’. 작은 파이 안에 통밤을 통째로 넣어 구워내, 한입 베어 물면 고소한 밤 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화려한 장식이나 다른 재료 없이, 오직 밤 본연의 맛에 집중한 이 파이는 단맛을 절제해 더 깊은 여운을 남긴다. 다른 파이들도 각기 다른 매력을 지녔다. ‘아몬드 팥 밤파이’는 합천 밤과 국산 팥으로 만든 앙금에 아몬드를 더해 고소함을 살렸고, ‘소보로 백옥 밤파이’는 부드러운 백앙금과 달콤한 소보로 토핑으로 부드럽고 포근한 맛을 더했다. 모든 제품은 지역 농가에서 직접 들여온 합천 밤만을 사용해 만들며, 정당한 가격에 구매함으로써 지역 경제에도 보탬이 되고 있다.

시그니처 제품인 삼남매 밤파이

삼남매제빵소를 이끄는 첫째 강혜진, 둘째 강병천, 셋째 강은화 씨

함양 ‘지리산황금나무’ 곶감빵
기다림으로 빚은, 함양의 맛
지리산 자락의 겨울은 감을 말리는 계절이다. 함양군 휴천면은 밤낮의 기온차가 크고 바람이 잘 들어, 곶감을 만들기에 더없이 좋은 땅이다. 천천히 말린 감은 윤기가 흐르고 속살은 말랑하며, 단맛은 깊고 절제되어 있다. ‘지리산황금나무’는 이 곶감을 빵 속으로 들이며 또 하나의 계절을 구워낸다. 이곳의 곶감빵은 유기농 통밀과 우리밀을 천연 발효종과 함께 반죽해 만든다. 기교보다 재료에 충실한 방식이다. 한입 베어 물면 쫀득한 감 조각이 입안에서 천천히 풀리고, 그 안에서 단맛과 고소한 풍미가 나직이 따라온다. 은근하고 깊은 맛, 그게 이 빵의 매력이다. 곶감이라는 재료가 가진 시간성과 손이 많이 가는 작업 그리고 그것을 빵으로 구워내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하면 이 빵은 허기보다 마음을 채우는 데 더 어울린다. 한 조각을 천천히 음미하는 동안, 지리산 언저리의 한적한 공기와 시간을 함께 받아들이게 된다.

지리산황금나무의 외관

손질한 곶감

곶감 타르트
작지만 가볍지 않은 디저트,
기억하게 되는 맛
디저트는 늘 작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결코 가볍지 않다. 지역에서 난 재료를 쓰고, 그 땅의 시간과 손길을 거쳐 만들어진 음식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하나의 풍경이고, 기억이며, 손끝의 기록이다. 남해의 바람이 닿은 유자, 산기운을 품은 합천의 밤, 기다림 끝에 완성된 함양의 곶감. 이 세 가지 재료가 만들어낸 디저트에는 경남이라는 지역이 오롯이 스며 있다. 입안에서 녹는 단맛보다 오래 남는 건, 그 맛을 통해 지나온 계절과 장소를 떠올리는 일일지도 모른다.
천천히 굽고, 천천히 먹고, 천천히 기억하게 되는 맛. 지금 우리가 찾아야 할 취향은, 어쩌면 그렇게 조용히 완성된 것들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