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 달도 되지 않은 오누이

제4기 경남문화기자단 백수정

골목길에 무심히 위치한 오누이북앤샵

같은 곳이라도 차를 타고 지나갈 때와 걸어 갈 때의 풍경은 완전히 다르다. 속도가 만들어내는 풍경과 섬세함이 다르다. 5월의 따뜻한 날, 창원 봉곡동 골목길을 걷는다. 봉림고등학교 담벼락을 따라 걸어서 내려가다 보면 작은 골목 사거리에 안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큰 창을 가진 작은 공간을 만난다. 간판이 없어 무심히 지나가면 가게인지 개인 사무실인지도 구분이 잘 가지 않는다. 책장에 책들이 있고, 누군가는 커피를 내리고, 누군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누군가는 창가에 앉아 혼자 글을 긁적이고 있다. 누군가는 필름카메라를 만지작거리고, 벽에는 그림들이 걸려있다. 창에는 우리말 ‘오누이’를 소리나는 대로 영어로 적은 ‘ONUI’라고 되어 있다. 누군가를 환영하는 듯 열려있기도 하고 굳이 들어올 필요는 없다는 듯 닫혀있는 느낌이기도 하다. 여기는 독립서점 오누이북앤샵이다. 차가 아닌 골목길을 걸어 이곳을 찾았다.

오누이북앤샵은 지역의 몇 안 되는 독립서점이다. 2018년 2월에 문을 연 이후로 지역의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꾸준히 주목을 받아왔다. 가게이름처럼 오누이 장찬미(31)씨와 화가인 동생 장건율(29)씨가 운영하고 있다. 화려한 상가거리가 아닌 골목길 한편에 일상의 공간 골목길에 우두커니 서있다.

책방운영에 분주한 오누이 그리고 벽에 걸린 청년작가의 작품

오누이가 독립서점을 하게 된 계기는 이렇다. 남동생 건율씨가 대학시절 창업동아리 활동 중에 공모전에 당선돼 독립출판물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다. 국문과 출신인 누나 찬미씨의 도움을 받아 잡지 <월간> 을 주제별로 출판했다. 내용은 월마다 하나의 주제아래 에세이, 사진, 그림, 시 등 다양한 형태의 장르로 남자30명, 여자30명의 기고를 받아 구성하였다. 이 경험을 계기로 책을 좋아하는 누나와 그림을 그리는 동생의 오누이북앤샵 콜라보가 이뤄졌다.

오누이가 출판한 잡지 월간시리즈

열 평 남짓 작은 공간이지만, 공간을 소개해달라는 말에 누나 찬미씨는 어디서 어떻게 설명을 시작할지를 망설인다. 작은 공간에 한 마디로 설명이 안 되는 뭔가 복잡한 이야기가 있다.

첫 번째 이야기 독립책방에는 독립출판물이 있다. 책이 많진 않지만, 오누이가 보여주고 싶은 세계가 담긴 책들이다. 주로 미술과 철학책들이고 지역 작가의 책도 있다. 독립출판물 외에도 오누이가 추천하는 일반 서적, 독서모임의 회원들이 함께 읽고 싶어 가져온 중고서적들도 자리하고 있다.

찬미씨가 직접 베이킹한 키슈와 타르트는 간단한 허기를 달래준다.

두 번째 이야기는 미술작품들이다. 책장을 제외한 나머지 벽들은 그림이 걸려있다. 동생 건율씨의 작품과 다른 곳에서 전시가 힘든 지역 청년 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전시하고 판매가 이뤄지기도 한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는 20대 청년작가 방상환씨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펜과 자로 작업한 패턴과 원의 세계가 섬세하게 그려진 작품들이다. 전시가 바뀔 때마다 그림과 책방이 오묘하게 연결되며 모습을 바꿔가는 듯 했다.

세 번째 이야기는 모임이다. 오누이는 하고 싶은 것들을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모임을 열고 있다. 지금까지 기타클래스, DSLR카메라, 뜨개질, 드로잉 등의 모임을 진행했다. 요즘 찬미씨는 독서모임을, 건율씨는 필름카메라 모임을 맡아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독서모임에는 30~40대들의 참여가 활발하고 필름모임에는 20대들이 많다고 한다.

동생 건율씨는 요즘 필름카메라에 빠져있다.

최근 독립서점들이 대안적인 문화공간으로 전국 곳곳에 하나 둘씩 생기고 있다. 아늑한 공간과, 아날로그 감성이 물씬 풍기는 독립서점이 소셜미디어의 ‘핫한’공간으로 뜨고 있긴 하지만, 대형서점과 경쟁이 안 되는 수익구조와, 공간의 이미지만을 겉으로 즐기고 가는 사람들 탓에 운영의 어려움도 제기되고 있다. 운영이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찬미씨는 기준이 다르다고 말한다. 물질로 환원되지 않는 것들을 많이 얻고 있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고, 마음이 편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고 말한다. 커피를 마시며 창밖만 봐도 행복하단다. 호리베 아쓰시는 <거리를 바꾸는 작은 가게> (민음사, 2018)에서 ‘가격이 싸기만 하면 좋다는 생각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주체는 경제가 아니라 문화의 힘’이라고 말했다. 오누이북앤샵에는 경제로서의 가게가 아니라 사람, 문화, 지역이 담긴 그 자체로서의 공간이 있다.

서점 한 구석, 공간이 말을 건다

마지막에 식상한 질문이 툭 튀어나와버렸다. ‘앞으로 포부나 계획이 있나요?’ ‘그런 거 없어요.’라고 찬미씨는 1초의 고민도 없이 말한다. 가게 계약이 올해 11월까지 인데 연장이 될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 하고 싶은 거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할 거란다. 이것 저것 많이 하는 오누이북앤샵의 정체성에 대해 사람들이 의아해 하는데, 딱 하나의 말로 정의되고 싶지 않단다. 그냥 오고 싶은 곳이면 된단다. 멋있다.

책방을 나오면서 찬미씨에게 추천받은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 (문학동네, 2019)와 창원에 사는 작가 김달님의 <나의 두 사람> (어떤책, 2018)을 샀다. <여행의 이유> 의 한 줄 평을 요청했더니 ‘여행의 이유는 삶의 이유로까지 지평을 넓혀준다’라고 말한다. <나의 두 사람> 은 작가가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보낸 따뜻했던 어린 시절을 그린 작품이다.

찬미씨가 추천해준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와 창원의 작가 김달님의 나의 두사람

전래동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가 떠올랐다. 호랑이에게 잡혀먹기 직전 하늘에서 내려준 동아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 남매는 오빠는 달이 되고 동생은 해가 되었단다. 오누이북앤샵의 오누이는 달랐다.

창밖으로 보이는 골목풍경. 찬미씨의 말대로 커피마시며 창밖만 봐도 행복해진다.

오누이는 동아줄이 내려오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호랑이를 물리칠 수 없음을 알고,
누이는 호랑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오라비는 호랑이에게 멋진 초상화를 그려주었다.
그러자, 호랑이는 오누이를 잡아먹지 않았다.
달이 되지 않아도 해가 되지 않아도 오누이는 행복했다.

※오누이북앤샵의 소식과 일상들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접할 수 있다. @onuionu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