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1) 영호남 문화교류 워크숍(7.22)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동성가족상담소가 한달에 한차례씩 벌이는 인권, 성, 문화 다양성을 주제로 한 영화 상영이 있는 7월22일 하동도서관 인근 에서는 섬진강 재첩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하동 송림과 섬진강변 주차장은 물론, 도서관, 이웃 중고등학교 교정에도 전국 곳곳에서 온 축제 참가자들과 차량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햇볕이고 그늘이고 불꽃이 이글거리는 날인데도 도서관 3층 시청각실에 들어서니 마침 냉방이 잘되어 서늘했다. 영화 시작 시각인 오후 1시30분이 되자면 30분이 남아있었다. 마침 영화상영 준비를 하는 하동성가족상담소 소장 김희순님과 유석준 부소장, 간사님 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문화예술위원회와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이 주최하여 수행하는 ‘무지개다시 사업’은 경남에서만도 14곳에서 벌이고 있으며, 오늘 행사도 그 사업의 하나라고 한다. 하동성가족상담소에서는 본디 업무가 상폭력 피해자 상담, 가족문제 상담이어서 이번 행사의 성격과도 썩 걸맞아 보였다. 2015년부터 무지개다리 사업을 시작하여 올해로 3년째 지속하고 있었다. 영화를 상영하자면 주민들의 참여와 호응이 필요할 터인데 어떻게 홍보활동을 벌이는지 궁금했다. 김 소장은 상담소에서는 회원과 영화 동호인 중심으로, 도서관에서는 도서관 출입 주민들과 학생을 상대로 홍보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이에 더하여 하동읍사무소에서 당일 영화 상영에 즈음하여 두차례씩 방송을 내보낸다고 한다. 적은 날은 이삼십명, 많은 날은 사오십명이 찾는다니 작은 시골 읍 단위에서 볼 때 적잖은 관객이다.
그림2) 성폭행 피해자이자 활동가들이 작성한 미국 성폭행 대학캠프스 지도. 스스로 밝힌 성폭행 피해자가 전체의 5% 안쪽이라고 하니 이런 점을 고려하며 봐야 할 성싶다.(영화에서 찍음)
영화 <더 헌팅 그라운드>(The Hunting Ground, 감독 커비 딕, 상영시간 90분)는 실화로, 사건 당사자들이 출연하여 꾸린 다규멘터리다. 제목을 우리말로 바꾸자면 ‘사냥터’쯤 되려나. 말하자면 미국에 있는 유명 대학캠퍼스가 곧 성폭력자들의 사냥터라는 말이다. 사람이 짐승을 잡는 사냥터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잡는 사냥터, 특히 야비한 남학생들이 순진한 여학생들을 사냥감으로 삼아 온갖 성폭행과 폭력이 벌어지는 대학캠퍼스가 주된 배경이다. 숱한 피해자들이 하소연하여도 학교나 경찰에서 묵살하기가 다반수고, 고소고발을 하여도 당국에서는 무시하거나 오히려 피해자들을 말썽쟁이로 만들기 일쑤다. 이를 참지 못한 너댓명의 성폭력 피해 여학생들이 모여 전국 캠퍼스를 대상으로 피해자 규합과 구제, 고소ㆍ고발, 가해자 처벌 운동에 나서는 얘기다. 특히 사교클럽, 에스이시(SEC), 풋볼선수단 얘기들을 하면서 오늘날의 미국 대학교는 학교가 아니라 거대한 ‘기업’이라는 말이 나온다. 후원금이나 기부금으로 돈을 모아 학교를 운영하면서 ‘교육’이란 본질과는 멀어진,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체’로 변질되었다는 말이다. 그 속에서 남녀 학생들 사이의 성폭력 사건은 학교의 명예와 위신을 살린다는 명분 아래 공공연하게 묵살되거나 덮이는 현실을 고발한다. 알렉사 슈워츠, 캐럴린 루비, 아리 모스토브 등 피해자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넘어 다른 학교의 성폭행 피해자들을 만나고 연대하여 결국 전국 성폭력 피해자 캠퍼스 지도를 만든다.(그림 1, 그림2) 성폭행을 당하고 고소를 하는 피해자들은 5% 정도밖에 안된다니 가히 그 규모를 짐작하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성문제에서 미국보다 보수적이면서도 관대한 우리나라는 어떨까 궁금하지만, 그 실태를 밝힌 사례는 드물다.
영화가 끝난 뒤 잠시 소감을 들어봤다.
관객의 한 분인 문윤희(순천)님은 “우리나라에서는 고소고발 즉시 경찰에서 바로 사건 수사와 처벌에 들어가는 것으로 아는데, 이제끼지 선진국으로 알고 있는 미국 대학의 실태가 이 정도인가, 무척 뜻밖이라 놀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한 관객은 “삼사십년 전 우리 대학에서도 요힘빈(발정제) 얘기가 있었듯이, 우리도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김성숙 주민(옥종)은 “미국에서도 체면이나 명예를 중시하여 사건을 숨기려 하는 동양적 정서가 엿보여 씁쓰레했다”며 “한편으로는 피해 당사자가 자신이 겪은 일을 가감없이 드러내어 잘못을 바로잡고자 하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용기가 놀라웠다”고 말했다. 또한 성폭력과 다소 거리가 있지만 “한국여성의전화 집계로, 데이트 폭력에 대한 상담을 한 사람 188명 가운데, 실제 신고자가 30명뿐(2016.10)이었다”는 통계 수치를 들어 우리의 현실을 언급하기도 했다. 체면을 중히 여기고 자기고백을 기피하는 우리 풍토에서 볼 때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얘기였다.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 일일 수도 있다는 점, 성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다는 점에서 대학생뿐만 아니라 학부모들도 널리 봤으면 좋겠다는 반응이 다수였다.
그림3) 미국 대학캠퍼스 성폭력 피해 여대생이자 성폭력 추방운동 활동가로 나선 등장인물들.(영화에서 찍음)
영화 감상이 끝난 뒤 회의실로 자리를 옮겨 “2017년 영호남 문화교류 워크숍”이 진행되었다.
이 자리엔 경남문화예술진흥원 하춘근 문화정책부장, 김종민 대리, 섬진강문화예술체험학교 이유정 대표, 문윤희, 박나련, 윤진미 활동가, 하동성가족상담소 김희순 소장, 유석준 부소장과 활동가들이 자리를 함께했다.(그림 3)
섬진강문화예술체험학교는 전남문화관광재단의 지원을 받아 순천에서 운영하고 있는, 무지개다리 사업을 함께 벌이는 호남쪽 모임이다. 이날 워크숍에서는 두 지역의 문화 차이를 알아보고 소통과 공감의 폭을 넓히는 방안과 영호남 다문화 가정의 성인지 정도를 살피는 일, 교육을 통해 바람직한 사고를 넓혀갈 방안들을 토론했다. 이날 두 지역 모임의 구체적인 교류 일정을 확정했는데, 8월30일 찾아가는 영화 상영(순천), 9월27일 찾아오는 문화체험 활동(하동)을 벌인다는 것이 그 뼈대였다. 아울러 그 행사의 세부 사항도 함께 살폈다. 뒤풀이는 하동읍 광평리 찻집에서 가볍게 치렀다.